"어쩌면 공포는 열망의 뒤통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망을 느끼지 않으면 공포도 느낄 수 없을 테니까" 작가 공지영(38)씨는 기행에세이 '수도원 기행'(김영사) 첫 장에서 여행을 하고픈 열망과 떠나는 두려움을 이렇게 적고 있다. 모든 떠남은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자 낯선 것과의 새로운 만남이지만 이번 수도원 여행은 공씨에게 각별했다. 얼마전 18년 만에 성당을 다시 찾아 믿음과 사랑에 귀의한 공씨가 유럽 수도원에서 그 믿음의 진정성을 심판대에 올리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었다. 공씨의 기행문은 자연스럽게 참회문이자 기도문에 가까워졌다. 그는 프랑스 아르정탱에 있는 베네딕트수도원을 비롯 솔렘 남자 수도원,세계각국의 수사 90여명이 공동생활을 꾸리는 테제 공동체,스위스 마그로브 및 오트리브 수도원,독일 킴지 여자 수도원과 림부르크 수도원 등을 방문한다. 여기서 단정하면서도 엄숙한 수도원 전경,천진난만한 미소로 맞는 수녀들,소박하지만 품위있는 식사,영혼을 흔드는 수녀들의 성가 등을 체험한다. 동시에 회한과 깨달음이 섬광처럼 스친다. "나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생각보다 생은 길고 나누어야 할 것은 아주 많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 전에,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다"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해도 실천은 쉬운 일이 아니다.버리고 나서 오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까봐,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 우리는 하찮은 오늘에 집착한다" 공씨는 18년 만에 가톨릭으로 돌아온 자신이 가진 게 모두 떨어져 귀향한 '탕자'처럼 느껴진다. "그 알량함을 탕진하고야 나는 스스로 내 코에 고삐를 맬 수 있었다"는 것. 뒤늦게 각성한 '마흔이 다 된 늙은 소녀'는 마침내 "하느님,저를 지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린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