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위대한, 혹은 유명한 소프라노는 누구일까? 바로 마리아 칼라스일 것이다. 가장 위대한지는 확신할 수 없어도 가장 유명한 것만은 분명하다. 평생 오페라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칼라스의 이름은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 오늘날의 소프라노 가운데 칼라스와 가장 닮은 이는 누구일까? 많은 음악평론가와 전문가들은 올해 35세가 된 루마니아 출신 안젤라 게오르규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게오르규는 여러 가지로 칼라스와 닮았다. 귀부인을 연상시키는 우아하고 화려한 외모, 비단결같다기보다는 뚜렷하게 강렬하고 호소력짙은 목소리, 한 편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드라마틱한 인생역정 등등... 아마도 순전히 음악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칼라스보다 뛰어난 소프라노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칼라스만큼 유명해지지 못했다. 게오르규도 마찬가지다. 현재 활동중인 소프라노중 게오르규보다 뛰어난 소프라노는 제법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오르규는 가장 화려한 빛을 발하는 프리마돈나로 각광받으며 세계 오페라 무대를 누비고 있다. 게오르규를 유명하게 만든 눈에 띄는 이력의 하나가 바로 '제4의 테너'로 불리는 로베르토 알라냐와의 결혼이라는 점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파리의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부르며 음악학교라곤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던 알라냐를 세계적 테너로 키운 원동력이 된 게오르규와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도 낭만적이다. 둘 다 재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쌍의 잉꼬같은 금슬로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이 부부는 공동작업한 몇 편의 앨범으로도 음악팬들 사이에 화제를 모았는데, 최근 게오르규는 데카를 떠나 남편이 속해 있는 EMI로 전속을 옮겼다. 가장 최근 출시된 앨범 '카스타 디바(Casta Diva.정결한 여신)'는 게오르규의 EMI 이적 데뷔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의 그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선보이고 있어 이채롭다. 지금까지 게오르규는 베르디, 푸치니, 구노, 마스네 등 극적인 호소력과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19세기말 오페라의 캐릭터를 주로 맡아 화려한 슬픔의 노래로 심금을 울렸으나 이번에는 노래 자체의 아름다운 울림과 기교를 중시한 19세기초 벨리니와 로시니의 벨칸토 레퍼토리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음반에는 벨리니의 「노르마」중 '정결한 여신', 「청교도」중 '오라, 사랑이여', 「몽유병 여인」중 '아, 믿을 수 없어라', 로시니의 「윌리엄 텔」중 '피 흘리는 숲', 「세빌리아의 이발사」중 '방금 들린 그 목소리', 「코린트의 포위」중 '운명의 시간은 다가오고',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중 '조용한 밤' 등 15곡의 아리아가 수록됐다. 이 음반의 타이틀 롤이기도 한 '정결한 여신'은 과거 칼라스의 절창(絶昌)이 바로미터처럼 돼 있는 소프라노 아리아인데 테크닉과 미성(美聲)을 정신의 고양과 조화시키려는 모든 소프라노에게 최상의 본보기로 꼽히는 곡이다. 게오르규의 '정결한 여신'은 이 젊은 소프라노가 얼마나 탄탄한 기교와 힘찬 미성을 가졌는지를 보여 준다. 쭉쭉 뻗어나가는 힘찬 목소리와 긴장감 넘치는 화려한 콜로라투라는 170㎝가 넘는 그의 늘씬한 외모를 연상시킨다. 이런 인상은 '아, 믿을 수 없어라'와 '방금 들린 그 목소리'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며 '오라, 사랑이여'에서의 무시무시한 고음의 짜릿한 피날레는 게오르규가 벨칸토 레퍼토리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이 음반에서 들려 주는 게오르규의 목소리는 그의 외모에서 느껴지는 싱싱한 젊음만큼이나 더할나위 없이 청신하고 건강한 반면, 그윽한 저음의 울림이나 고음역에서의 섬세하면서도 시적(詩的)인 감정표현은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어찌보면 그의 타고난 개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인데, 화려한 장식음 등 고음역에서의 섬세한 표현력은 조수미 등의 정상급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에 미치지 못하지만 강렬하면서도 시원스런 목소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에벨리노 피두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선 굵은 반주는 게오르규스타일의 벨칸토 아리아와 썩 잘 어울린다. '카스타 디바'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과감한 첫 발을 내디딘 게오르규가 앞으로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가올지 기대가 모아진다.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passi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