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디지털문학대상 수상작가인 강기희(37)씨의 신작 장편소설 「은옥이」(명상)는 이념과 분단에 희생된 한 어머니의 슬프고 처절한 이야기다. 주인공 허은옥은 한국전쟁 직후 서울 인민위원회 지도자를 지낸 빨치산 남편 나태석을 따라 북상하다 강원도 정선 함백산중에서 토벌군의 공격으로 남편과 헤어진다. 남편은 붙잡히고 은옥은 어린 아들과 함께 주민들에 의해 거둬진다. 은옥은 남편이 이미 처형당했으리라 여기며 희망을 포기하고 금광 주변 마을에서 신분을 숨긴채 사금 채취로 가까스로 삶을 이어 간다. 아무 연고 없는 곳에 홀로 내쳐진 젊은 여인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다. 혁명을 통한 이상사회를 꿈꿨건만 이제는 오로지 생존이 문제가 됐다. 한때 금광 작업반장과 결혼해야 했고 거친 뭇남자들에게 몸을 내줘야 했으며 부잣집의 씨받이가 되기도했다. 이런 과정에서 아버지가 다른 4명의 자식이 태어나고 고통은 대물림된다. 큰 아들은 '잘못된 전쟁'인 베트남전 참전으로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고 범죄의 길로 들어선 둘째 아들은 무기수가 된다. 또 공장에서 일하는 딸은 왜곡된 현대사회가 낳은 속물근성의 남자에게 버림받는다. 소설 속 화자이자 또 다른 아들인 일간지 연예부 기자 전주필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선택한 아내로부터 이혼당하는 아픔을 겪는다. 소설은 전 기자의 일상과 형제자매들이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현재의 이야기와 어머니 은옥이 겪은 고생담을 번갈아 가며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오랜 세월 비참한 생활을 이어 온 은옥을 참고 견디게 한 것은 '민족해방'의 그날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듣고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다. 이후 한때 회복하는가 했더니 어느날 TV 뉴스를 통해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이 비전향장기수로 석방돼 북송되는 장면을 보고 심장마비로 급사하고 만다. "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도 좋지만 그전에 지난 시절 이념대립으로 죽어 간 이들의 명복을 빌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소설은 죽은 자들을 위해 산 자들이 마련한 일종이 살풀이굿이며 살아 남은 자들의 상처 치유하기다. 소설 의 작가 박일문씨는 "저자 강기희씨는 50년 우리 현대사의 질곡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가장 가슴아프게 그린 작가"라고 했다. 정선에서 나고 자란 강기희씨는 "빨치산 하면 주로 지리산이 연상되지만 그들의 북상 퇴각로였던 강원 지방의 산악에도 빨치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며 "이 소설은 그들의 존재를 알린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성섭 기자 le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