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종사자를 포함,해방과 6.25를 전후해 월북한 음악인은 30명선인 것으로 집계됐다. 평양에서 60년대 이후 발행된 조선예술, 조선예술 등 문화관련 잡지를 종합해보면 작곡가는 이면상 이건우 안기영 김순남 등이고 기악을 전공한 음악인은 문학규박현숙 이인형 이정언 등이다. 또 국악인으로는 안기옥 공기남 조상선 임소향 박동실 정남희 김진명 등이고 대중가수및 작사자로는 이규남 조영출 이정구 이영학 박세영 등이 월북했다. 해방전에는 시인도 대중가요의 가사를 필명으로 많이 썼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박세영과 조영출이 꼽히고 있다. 이들은 고령으로 지금은 거의 사망했거나 활동을 중단한 상태인데 작곡가로는 이면상이, 작사자로는 조영출과 박세영이, 국악인으로는 김진명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작곡가동맹위원장을 지낸 이면상은 지난 89년 사망할 때까지 북한 최고의 작곡가로 대접 받았고 `꽃신' `눈이 내린다' `봉화산 기슭' `우리 자랑 이만저만 아니라오'등의 작품을 남겼다. 특히 `눈이 내린다'는 장중한 분위기로 인해 만수대예술단에서 무용배경음악과기악곡 등으로 편곡됐으며 현재도 북한에서 널리 애창되고 있다. 조영출은 너무나 유명한 대중가요 작사자로 '조명암' 등의 필명을 사용했다. '감격시대' '청춘일기' '울며 헤진 부산항' '낙화유수' '서귀포 70리' '집없는천사' '알뜰한 당신' '고향생각' 등이 해방전 그가 남긴 대표적인 작품들이며 북한에서는 '얼룩소야 어서 가자' '어랑타령' '해당화' '모란봉' '천하제일 평양일세'등을 작사했다. 조영출은 93년 5월 사망했고 국립민족예술극장 총장, 문화성 부상, 조선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박세영은 북한 `애국가'를 작사한 시인으로, 북한에서는 "우리나라 국가인 애국가와 더불어 영생하는 시인"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46년 여름 북한으로 넘어갔고 월북 직후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북한의 `애국가'를 창작했다.. 이후 `해변의 처녀' `밀림의 역사' `나팔수', `귀국동포환영곡' 등을 발표했고지난 89년 2월 사망했다. 안기옥 박동실 정남희 조상선 공기남 임소향 최옥삼 김진명 등은 모두 북한에서 '민족음악'(국악)을 발전시킨 공로자'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서도소리의 명창 김진명은 지난 97년 사망할때 까지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국악인을 양성, 북한 '민족음악의 대부'로 평가받고 있다. 사망 당시 북한 문화예술부(현 문화성)와 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에서는 공동명의로 발표한 부고에서 "동지(김진명)는 비록 사망했으나 주체적 음악예술 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는 길이 남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부고는 이어 "그는 당의 주체문예사상을 높이 받들고 '강건너 마을에 새 노래들려온다'를 비롯한 여러 편의 창극과 민요, '만경대의 봄' '모란봉' '바다의 노래''얼룩소야 어서 가자' 등 수많은 민요를 창작했으며 후비육성과 민족음악연구사업에크게 공헌했다"고 전했다. 1913년생인 김진명은 55년 8월부터 국립민족예술극장 배우로 활동해오다 59년과65년에 공훈배우와 인민배우 칭호를 각각 받았다. 가수 이규남과 왕선아는 북한에서 '최영감네 평양구경' '사회주의 낙원일세'등을 불렀다. 한편 월북음악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들로 평가되는 김순남에 관해서는구체적인 자료가 나오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정치적인 이유로 북한에서 거의활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해방전후 가장 뛰어난 민족음악가로 꼽히는 김순남은 지난 48년 월북한 뒤 53년남로당 숙청 당시 함께 숙청돼 어렵게 살아가다 86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가곡 `진달래꽃'과 `산유화' 등의 작품을 남겼다. 안기영은 북한에서 가곡 '마의 태자' '그리운 강남'및 '콩쥐 팥쥐' '견우직녀''은하수'등의 가극을 창작하면서 '민요의 현대화'에 앞장섰다. 그와함께 월북한 딸 안남식은 현재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편 기악을 전공한 문학규 박현숙 이인형 이정언 등의 활동 내용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서울=연합뉴스)최척호기자 chchoi0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