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었다. 또 하나의 나는 나를 조상(弔喪)하고 있었다. 눈물은 흘러서 호롱불이 일곱빛 무지개를 세웠다. 산호뿔 흰사슴이 그 다리 위로 와서 날개를 쓰러진 내 가슴에 펴며 구구구 울었다. 나는 저만한 거리에서 또 하나의 이러한 나를 보고 있었다.(희망 전문.1951년)' 독자적 세계관으로 개성적인 시 미학을 성취한 원로시인 김구용(79)씨의 대표시들을 모은 2권의 시집 '뇌염(腦炎)'과 '풍미(風味)'(솔)가 나왔다. 한국전쟁의 참화가 극심했던 1950년대에 썼던 시에 일부 근작을 보탠 시집들이다. 지난 49년 김동리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은 50년대 이후 은둔생활을 하며 극소수의 작품만 내놓은 데다 시가 난해해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시가 어렵지만 깊은 사유의 지평위에 구축됐고 혹독한 시대고(苦)를 높은 예술성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최근 문단에서 재평가되고 있다. 당대 시인들이 넘치는 격정이나 논리의 극단에서 현실을 읊었던 것과 달리 시인은 건조한 문체와 '논리부재의 어법'으로 부조리한 세상과 맞섰다. 그것이 시대정황에 가장 정직한 대응방식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시 '희망'은 절망의 끝에서 다짐하는 새로운 삶의 자세를 제3자의 시각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시인은 전쟁의 부조리 속에서는 정제된 형식보다 산문시 형식을 취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이 어법은 탱크가 전진하는 모습을 담은 '인간기계'에서도 나타난다. '마음은 철과 중유(重油)로 움직이는 기체(機體)안에 수금(囚禁)되다. 공장의 해골들이 핏빛 풍경의 파생점을 흡수하는 안저(眼底)에서 암시한다. … 인간기계들은 잡초의 도시를 지나 살기 위한 죽음으로 정연히 행진한다.(인간기계중.1951년)' 기계화된 인간과 정신의 수금의식이란 이미지는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 읽어도 낯설지 않다. 죽음과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표제작 '뇌염'도 그렇다. '고혈(枯血)마저 맑은 빗발이 되어 폐허를 씻고, 매몰된 문화의 파편을 축일 때 병균은 멸망할 것이다. … 세균들은 그들 각자의 순수한 빛을 완성하려는 지향(志向)이었다. 생명이 생존하는 생명을 침식하며 번식하고 있다.(뇌염 중.1952년)' 뇌염이 흙탕물같은 현실을 직시한 시라면 또 다른 표제작 '풍미'는 진흙 속에 핀 연꽃을 관조한 작품이다. 그 연꽃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불교사상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 '나는 판단 이전에 앉는다./이리하여 돌(石)은 노래한다./생기기 이전에서 시작하는 잎사귀는/끝난 곳에서 시작하는 엽서였다./대답은 반문하고/물음은 공간이니/말씀은 썩지 않는다./…녹(綠)빛 도피는 아름답다./그대여 외롭거든/각기 인자하시라.(풍미 중.1970년)' 네살 때 금강산 마하연에 입산, 불교와 한학에 몰두했던 시인은 '채근담' '노자' '삼국지' '수호전' 등 중국고전들을 맛깔스럽게 번역해 내기도 했다. 그는 서예에서도 일가를 이뤘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