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오래된 정원"으로 문단에 복귀했던 소설가 황석영(58)씨가 한국전쟁 초기 황해도 신천군에서 발생한 양민학살사건을 다룬 장편소설 "손님"(창작과 비평사)을 펴냈다. 북한에서 "신천 미제 양민 학살사건"으로 불리는 이 만행은 인천상륙작전 직후인 1950년 말 전체 군민의 4분의 1인 3만5천여명을 희생시킨 참극이다. 피카소 작 "코리아의 학살"의 모티프가 된 사건이기도 하다. "북한의 선전과 달리 신천학살은 사실 우리 내부의 사건이었죠. '미제'는 원인 제공자일 뿐 우파 기독교도들이 저지른 만행이었습니다" 황씨는 방북 현장답사와 미국 체류기간중 만났던 학살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소설은 미국에 사는 류요섭 목사가 고향 방문단의 일원으로 신천을 방문하기 전 악몽에 시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학살현장에서 류 목사는 자신의 형을 비롯한 우익 기독청년들이 토지개혁을 둘러싸고 마르크스주의 추종세력인 소작인들과 갈등끝에 만행을 저지른 사실을 알게 된다. 서로 살육하던 유령들이 번갈아 나타나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간의 해원(解怨)이 이뤄진다. 손님은 외래사상인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를 상징한다. 작품은 망자를 저승으로 천도하는 황해도 진지노귀굿 열두 마당을 기본 얼개로 차용해 12장으로 쓰여졌다. 여기에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이란 씨줄과 등장인물 각자의 삶과 체험을 총체화한 '구전담화'란 날줄로 '주단을 짜듯' 집필했다는게 작가의 설명이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규명에 망자의 이야기를 도입함으로써 기존 리얼리즘의 틀을 깨는 새 형식의 리얼리즘을 구현했다. 황씨는 요즘 문학과 영화의 결연에 눈길을 주고 있다. 최근 후배와 영화사를 차렸고 경마장을 무대로 한 갱영화 각본을 완성, 오는 15일께 제작발표회를 열 예정이다. 그의 대표작 '장길산'은 애니메이션 계약을 맺은 상태. '손님'도 영화 '비정성시'의 감독인 타이완 후샤오시엔 감독으로부터 영화화 제의를 받았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