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볼로냐 시내 한가운데에 마조레 광장이 있습니다.

산 페트로니오 성당과 델 포데스타 궁전이 있는 곳이지요.

그 곁에 커다란 탑이 두 개 서 있는데 둘 중 하나는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습니다.

기울어진 탑의 뒤편에서 단테의 글귀를 발견했습니다.

볼로냐 도서전에 들렀다가 7백년 전의 단테를 만나게 됐으니 얼마나 반가운지요.

그는 피렌체 태생이지만 볼로냐 대학에서 많은 지식과 영감을 얻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볼로냐 대학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역사가 9백년이나 되지 않습니까.

그가 들렀을 만한 장소와 그가 어루만졌을 기둥들을 쓰다듬으면서 탑의 글귀를 따라 시간여행을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단테의 생가가 있는 피렌체로 달려갔습니다.

피렌체의 두오모 광장 바로 옆에 있는 견고한 석조건물.

연인 베아트리체를 평생 잊지 못하고 밤마다 시를 쓰면서 슬픔을 달래던 곳이지요.

부유한 집안 딸이었던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강요로 돈 많은 상인에게 시집을 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스물네살에 꽃다운 생을 마감했지요.

단테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인간의 교만과 방종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습니다.

특히 교회의 세속화와 황금만능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했지요.

그래서 대성당을 지척에 두고도 골목에 있는 작은 교회에 다녔습니다.

돈만 밝히는 상인들을 탐탁잖게 여기던 그가 사랑하는 베아트리체를 ''수전노''에게 빼앗겼으니 얼마나 비통했겠습니까.

그 아픔들을 속으로 삭혀 올올이 엮어낸 것이 바로 ''신곡''이지요.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삶에는 아홉이라는 숫자가 여러 가지로 연관돼 있습니다.

단테가 그녀를 만난 것이 아홉 살 때였고 다시 만난 게 9년 뒤였으며 ''신곡''도 아흔아홉개의 칸토(곡)와 서곡 하나로 이뤄져 있으니 놀랍지 않습니까.

단테는 작품 속에서 그녀를 아홉번째 달 아홉번째 날에 죽은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그에게 9는 ''경이로운 삼위일체''의 이상적인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 사람의 생애를 온전히 사로잡고 삶의 의미까지 바꾸는 것일까요.

육신의 죽음 후에 더욱 밝게 빛나는 영혼의 생명력,7백년 뒤에도 여전히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에너지.

가장 크고 완벽한 숫자인 9로 사랑의 아픔을 승화시킨 단테에게서 열정(시)과 이성(철학)의 씨줄 날줄이 어떻게 직조되는지를 새삼 발견하게 됩니다.

피렌체 시내를 가로지르는 아로르 강물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그것.

아흔아홉 굽이를 돌아 마침내 위대한 작품으로 솟아오른 부활의 힘.

단테의 경우처럼 우리들 인생의 탑에 새겨질 문구는 어떤 걸까요.

그리고 숫자는?

볼로냐에서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