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인생"은 삶의 지형도를 스스로 그려가기가 어렵다.

그저 세파에 몸을 맡긴 채 물결처럼 떠돌 뿐이다.

인기작가 은희경(42)씨가 "그렇고 그런" 한국 보통 남자들의 삶을 그려낸 장편 "마이너리그(창작과 비평사)"를 펴냈다.

이 작품은 남자 고교동창생 4명의 25년간에 걸친 인생유전을 담은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은씨는 한국문단에선 ''메이저리거''지만 이 땅의 ''여성''이며 또한 ''아줌마''란 점에선 ''마이너리거''이기도 하다.

그가 작품속 남성 주인공들에게 적의보다는 연민을 드러내는 이유다.

그러나 정실과 학벌 등 사회에 만연한 병리현상에 대해서는 작가 특유의 예리한 칼날을 들이댄다.

58년 개띠 동갑인 주인공들은 1970년대 학창시절과 유신시대의 긴급조치,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항쟁 등 사회적 격동기를 함께 보낸다.

하지만 시대의 모순에 정면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그저 먼 발치에서 구경했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들''이다.

주인공들은 고교시절 우연한 사건으로 ''한통속''이 된다.

작중화자인 ''책벌레'' 김형준,활달한 성격탓에 오지랖이 넓은 조국,잔꾀많은 미남 배승주,삼류 건달 장두환은 숙제를 하지 않아 함께 ''드렁칡''처럼 얽혀 벌을 받는다.

그렇게 ''만수산 4인방''이 탄생한다.

이들은 닮은 데라곤 전혀 없지만 특출난 재주가 없다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각자는 자신이 다른 세 친구보다 낫다는 우월감에 사로잡여 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어쨌든 이들은 ''출세''를 하지 못하고 드렁칡처럼 얽혀 꼬여가는 인생을 살아간다.

예쁜 여고생 소희를 놓고 벌이는 각축,두환과 소희의 야반도주,삼류대 진학과 대학생활,10여년 만의 해후와 비극 등을 겪으면서 서로에게 우정과 원망,연민의 골을 깊게 판다.

이들은 직업인으로 다시 뭉쳐 사업을 벌이지만 ''메이저''들의 공세 앞에선 무력하기만 하다.

''한번 마이너는 영원한 마이너''이며 ''인생에 패자부활전은 없다''는 통념만 씁쓸하게 되씹을 뿐이다.

하지만 작가는 일류인생만으로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숲을 울창하게 만드는 것은 대나무 전나무 등 주력 나무군이 아니라 이끼와 드렁칡같은 하찮은 식물들인 것처럼.

이 소설은 진지한 주제를 다뤘지만 결코 심각하지 않다.

독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서사장치들이 작품 곳곳에서 번뜩인다.

문학평론가 최원식(인하대)교수는 ''가볍되 경박하지 않은 특유의 문체에 기초한 안정된 서사력으로 문학적 진실을 길어 올린다''고 평가했다.

한때 남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던 은씨는 이 작품으로 남성과 화해하게 됐다.

"허위의식을 강요하는 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의 짐이 버겁게 느껴졌다"고 은씨는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