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가 5백년동안 굳건히 버텨 온 것은 밑바닥에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한 선비정신과 한국 국민정서이기도 했던 충효사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근자에 와서 1백가지 행실중 으뜸으로 여겼던 효(孝)사상마저 퇴색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 그림은 ''성무득어(成茂得魚)''(종이에 채색,53.5X81㎝)란 명제가 붙어 있는 효행도(孝行圖)다.

1996년 혜촌(惠村) 김학수(金學洙·82)화백이 ''한국의 충효 위인 도감''을 만들기 위해 그린 것이다.

혜촌은 이당(以堂) 김은호에게 인물ㆍ화조를,소정(小亭) 변관식에게 산수화를 사사한 풍속화가다.

혜촌은 30여년전부터 점차 잊혀져 가고 있는 우리나라 아름다운 풍물과 조상들의 생활 풍속을 담은 한국 역사 풍속화를 그리려고 무진 애를 써왔다.

단순한 기록화적인 점에서 탈피, 예술성을 살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은 것이다.

풍속과 산하의 아름다움을 손재주만으로 표현하는게 아니라 현지 답사를 하고 학문적인 뒷받침을 위해 고증까지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성무득어''는 조선시대 강릉에 살던 이성무란 사람이 병든 노모가 한겨울에 물고기회를 먹고 싶어해 아우들과 함께 냇가에 가 물고기를 구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이들이 냇가에서 물고기를 얻기 위해 하늘에 간절히 빌었더니 꽁꽁 얼어붙었던 얼음이 풀리면서 물고기가 튀어 나왔다.

그 물고기를 가지고 가서 어머니께 드렸더니 어머니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얘기다.

임금이 이 일을 전해 듣고 그의 자손들에게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고 한다.

혜촌은 단순히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회화성을 살리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했다.

자연경치는 물론 집의 구조,사람들의 복식까지 일일이 고증을 거쳐 재현해 냈다.

지붕과 나무에 쌓인 눈으로 한겨울임을 나타내고,물고기가 튀어나오자 좋아서 손을 올리는 표정까지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

혜촌은 지난 75년 가을 조선시대 사람들이 살던 모습과 그 풍운(風韻)을 주제로 ''옛 서울 그림전''을 열어 한국 제일의 풍속화가로 떠올랐다.

혜촌이 북(평양)에 처자를 두고 홀로 피란 온지 벌써 50여년.

무던히도 외롭게 살아왔지만 오히려 그 외로움을 그림과 기독교 신앙으로 이겨냈다.

새 장가 들라는 주위의 권유를 물리치고 홀아비로 살면서 후진을 양성하고 장학사업도 벌였다.

혜촌이 평양에서 교편(한문)생활을 할때 제자였던 이승만 목사(미국거주)가 89년 봄에 평양을 방문,함경도에 사는 혜촌가족을 평양에 초대해 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찍고 부인의 편지까지 받아 왔다.

편지에는 "지금까지 생사도 모르고 지내다가 제자인 이승만 목사에게 건강하게 잘 살아계시다는 소식을 전해들으니 한없이 기쁩니다. 지금까지 결혼도 안하고 사신다니 지난 세월이 얼마나 고달팠겠습니까.부디 건강하고 오래 오래 살아계시면 언젠가 꼭 만날 날이 있겠지요"라는 사연이 씌어 있었다.

혜촌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재개된 이산가족 1차 상봉때 가족들을 만날 양으로 신청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월간 아트인 컬처 대표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