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반갑다.

아랫녘엔 동백이 몽우리를 수줍게 틔웠다.

32년만이라는 경인지역의 게릴라 폭설도 계절의 오고감을 거스를수는 없는 일.

도심을 당황케 했던 그 호기로운 눈발의 뒷골목 자취마저 하릴없이 백기를 흔들고 있다.

봄은 늘 새롭다.

보내고 또 맞아 낯설지 않은 시간의 매듭이지만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어제의 연장을 단호히 끊고, 새로이 내딛는 출발의 의지와 희망을 한껏 부풀려 주기 때문이다.

봄을 맞으러 간다.

봄이 제일 어울리는 도시 통영을 향한다.

한려수도 삼백리 물길의 동쪽 끝자락.

맑은 자연과 문화, 역사의 숨결이 짙은 곳이다.

통영은 사뭇 이국적이기도 하다.

도심의 색채가 그렇다.

오렌지색 지붕과 베이지색 벽체.

드문드문 또 무리져 자리한 앙증맞은 색상의 주택들이 피어나는 봄꽃마냥 신선하다.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중)라 자랑할 정도로 이국의 정취 물씬하다.

남망산조각공원에 오른다.

10개국 조각가 15명이 합숙하며 만든 조각작품마다 문화의 향기 가득하다.

박경리를 비롯 음악가 윤이상, 시인 유치환, 김춘수 등이 나서 자란 곳이 아닌가.

정상 수향정 앞으론 한려수도 물빛이 부서지고 오른편으론 강구안의 풍광이 수수하다.

동양 최초의 바다밑 터널, 통영운하의 뱃길을 더해 한국 유일의 3중교통로를 이루고 있는 충무교 너머 미륵도로 들어선다.

산양관광도로를 탄다.

미륵도 해안을 따라 놓여 있는 23km 길이의 멋진 드라이브코스.

내내 동백길이다.

멀리 "헬도"와 마주하고 있다는 복바위(좆바위)에 대한 설명에 웃음꽃이 핀다.

만곡된 부분마다 보이는 해안마을이 정겹다.

굴 가공공장 마당의 굴껍질이 어마어마하다.

전국 굴 생산량의 70%가 이곳 통영에서 난다고 한다.

산양관광도로 중간지점 달아공원에서의 전망은 호탕하다.

진초록 바다위의 크고 작은 섬들이 품을 들여 만들어 놓은 듯 아기자기하다.

그 섬들 속으로 들어갈 차례.

미륵도 유람선 선착장에서 유람선에 몸을 싣는다.

임진왜란 때 화살대와 죽창을 만들어 썼다는 죽도(대나무섬), 충무공이 승전후 올라가 갑옷을 벗고 함성을 질렀다는 해갑도를 스쳐 한산도에 발을 딛는다.

비진도에 자생하는 팔손이나무(천연기념물63호)가 넉넉한 품으로 맞는다.

바로 위 제승당이 정결하다.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받아 본영을 설치했던 곳이다.

뱃길여행은 늘 그렇듯 기묘한 생김새의 섬이야기로 풍성하다.

다시 남쪽으로 뱃머리를 돌린 유람선 오른편 먼 곳으로 미인도가 보인다.

치마 입은 처녀가 무릎을 세우고 누워있는 모습이다.

뱀이 물을 스치는 형상의 장사도는 이미 붉은 동백밭이다.

한참을 더 달려 매물도에 닿는다.

안장을 푼 군마가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어서 마미도라 불리다가 사투리발음 탓에 매미도~매물도가 되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섬주민들이 메밀로 주린배를 채웠다고 해서 메밀도~매물도가 되었다는 설도 전한다.

대.소매물도. 물이 빠지면 소매물도와 자갈길로 이어지는 등대섬 등 세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등대섬에서의 남쪽전망이 비경이다.

태평양전쟁때 군함으로 오인해 함포사격을 했다는 등가도,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란 국도, 큰스님이 연꽃으로 피어났다는 연화도 등이 시선에 닿는다.

배에서 대하는 등대섬도 일품이다.

큰폭의 병풍바위 꼭대기에 서 있는 흰 등대, 진시황의 신하 서불이 불로초를 구하러 왔다가 글씨를 써 자취를 남겼다는 "글씽이굴" 등 갖은 기암괴석과 총석단애가 절경을 이룬다.

때가 맞으면 물질하는 해녀에게서 갓잡은 해산물을 구해 먹을수 있다.

유람선은 선수를 돌려 비진도쪽으로 뱃길을 잡는다.

아직 많은 섬들이 스스로를 이야기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뱃머리 저만치 앞서 화사한 봄기운이 뜀박질하고 있다.

통영=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