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야말로 진정한 벤처다''

''승려와 수수께끼''(랜디 코미사 지음,이은선 옮김,바다출판사,7천8백원)는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스승처럼 삶과 비즈니스의 참뜻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서양식 자본주의와 동양식 참선의 화두가 어우러진 독특한 세계.

벤처 창업 지침서이면서 진정한 성공의 의미까지 깨닫게 하는 교훈서다.

그래서 기존의 경제·경영서적들과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저자는 20년 이상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해온 전문경영인이자 벤처캐피털리스트.

시청 직원과 시간강사,콘서트 기획자로 전전하던 그는 애플에 입사한 후 매킨토시 응용프로그램 개발회사인 클라리스를 공동으로 창업했다.

''스타워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가 만든 루카스아트엔터테인먼트 CEO도 역임했다.

지금은 하이테크 기업을 육성하고 창업도 하는 ''버추얼CEO''로서 7개 e비즈니스 기업의 경영자문을 맡고 있다.

그는 선(禪)의 은유를 앞뒤에 배치하고 몸통 얘기를 중간에 앉힌 뒤 이를 수미상관식으로 연결한다.

첫머리의 화두.

오토바이로 미얀마를 여행하던 그는 어떤 사원까지 태워달라는 승려를 만났다.

하루 종일 먼지 투성이 길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더니 그 승려는 처음 만난 자리로 다시 데려다 달라는 것이었다.

어처구니없어 하는 그에게 승려는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계란을 1m 높이에서 떨어뜨리되 깨뜨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이 화두가 우리 인생이나 벤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야기는 몸통으로 넘어간다.

어느날 레니라는 청년이 저자를 찾아왔다.

벤처 창업 지망생인 그는 인터넷에 장례용품 포털사이트를 세우겠다며 일확천금의 꿈에 부풀어 있다.

"서둘러야 합니다.

기회만 잡으면 장례식 업계의 아마존닷컴이 되는 건 시간문제죠"

그는 단기간에 기업을 성장시키고 투자를 유치하며 합병·매각을 통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호언했다.

저자는 그의 창업계획서를 보고 차근차근 현실적인 문제들을 지적해 나갔다.

"왜 이 사업을 하려고 하는가? 단지 돈 말고 다른 이유는?"

사실 레니의 구상은 다른 데서 출발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조문객들이 먼 곳에서 오느라 애를 먹는 것을 보고 인터넷 조문 사이트를 떠올렸다.

그러나 곧 상업성에 사로잡혀 장례용품을 파는데에만 집착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레니의 원래 마음을 강조하면서 사업의 본질을 깨우쳐준다.

처음 뜻대로 인터넷 조문 사이트를 만들고 그것이 하나의 커뮤니티로 성숙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장사''가 되는 게 순서라고.

여행의 의미가 목적지에 곧바로 도착하는 게 아니라 그 여정에 있듯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저자는 사업을 가치있게 하는 것은 재정이 아니라 애정이라고 말한다.

''의지''와 ''열정''도 구분하라고 충고한다.

어떤 목적 때문에 할 수 없이 밀고 나가야 하는 게 아니라 평생토록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돈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기업문화,숫자상의 관리가 아니라 비전에 의한 통솔,사업상의 성공이 아니라 인생에서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모두들 조급하게 생각하고 ''대박''을 노린다.

그런 다음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그것이야 말로 시간낭비라고 일축한다.

물질을 위해 정신을 파는 파우스트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가 ''실리콘밸리의 철학자'' ''전문적 지식을 갖춘 구루(스승)''로 불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책을 덮고 생각해보면 레니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잊고 지내거나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느슨해질 때 책갈피 사이에서 바람을 가르는 저자의 ''죽비''에 기꺼이 어깨를 들이댈 일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