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G 마르케스의 단편집 ''여섯시에 온 여자''(문학사상사,민용태 옮김)는 수수께끼 모음집 같은 책이다.

소설이 암호문 같기로는 카프카를 능가할 작가가 드물지만 마르케스도 만만찮다.

독자는 스스로 표지(標識)를 만들어 소설의 미로를 헤쳐나가야 한다.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콩트 ''요사이 어느 하루''와 초기작 ''마콘도에 내리는 비를 본 이사벨의 독백''을 비교해 봐야 한다.

''요사이…''의 서술구조는 간단하다.

시장(市長)이 치과의사 아우렐리오를 찾아온다.

치과의사는 진료를 거절한다.

시장은 치아를 뽑아주지 않으면 총을 쏘겠다고 한다.

억지로 문을 연 치과의사는 시장을 눕히고 마취도 하지 않은채 생이빨을 뽑는다.

"스무명을 죽인 죄값입니다" 마르케스는 짧은 한마디로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사를 압축한다.

또 다른 작품 ''마콘도…''에서 역사의 비극은 폭우라는 재앙으로 상징화된다.

마콘도 마을에 쏟아지는 비.집과 교회는 싯누런 흙탕물에 잠긴다.

죽은 사람들이 떠내려오는 밤에 이사벨은 시공(時空)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다.

5일 전이나 5년 전이나 5백년 전이나 똑같다.

여자가 6시에 왔든 6시15분에 왔든 6시30분에 왔든 삶의 양태는 같다.

변하지 않는 세상.''아득한 옛날부터 녹슨채 삐걱거리는 이 지구''는 부정부패에 찌들어 있는 마르케스의 조국 콜롬비아를 가리킨다.

불변의 역사에 대한 권태는 ''백년,천년 동안의 고독''의 모티프가 됐다.

실제로 콜롬비아 유력지 파리 특파원이었던 마르케스는 1955년 특종 기사를 썼다.

콜롬비아 군함이 미국에서 돌아오던 중 침몰,해병 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마르케스는 군함이 고위층의 밀수품을 나르다 좌초했으며 밀수품 때문에 인명구조활동을 벌이지 못했음을 밝혀냈다.

신문은 곧 폐간됐고 마르케스는 망명길에 올랐다.

끝없이 반복되는 불의의 역사.칼 대신 펜을 들기로 한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사회적인 문제를 문학적인 구조속에 용해시켜낸 탁월한 역사가이기도 하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