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기에는 얄궂은 날들이다.

아침 저녁나절의 한기가 섣달추위에 못지 않다.

산과 들도 온통 무채색으로 볼품없이 변해 버렸다.

단풍은 넘겨진 달력에나 매달렸고 눈꽃구경은 아직 이르다.

뜨뜻한 아랫목을 털고 일어설 까닭을 찾을수 없다.

하지만 홀로하는 여행이라면 지금이 좋다.

모두들 인공눈으로 치장한 스키장으로 향할 때 시골의 호젓한 아스팔트길을 내닫는 맛을 무엇에 비교할수 있을까.

무엇보다 북적대지 않아 좋다.

혼자하는 시간이기에 지난 길을 되돌아볼 여유가 많은 것도 매력이다.

무작정 길을 나선다.

단양으로 향한다.

충북의 북동쪽 구석진 땅, 강원과 경북의 도계에 싸인 작은 도시다.

붉을 단(丹), 볕양(陽).

이름이 예쁘다.

옛날 중국의 신선이 먹었던 환약 연단조양(練丹調陽)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신선이 다스리는 살기 좋은 고장이란 뜻이 담겨 있다.

살기 좋은 곳은 아니었다.

오지중의 오지로 꼽혔었다.

대부분이 산악지대다.

80%가 넘는 땅이 험준한 산으로 되어 있다.

이를 이름으로 비보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단양팔경의 으뜸 도담삼봉을 만난다.

단양을 지나는 남한강 물길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선 세개의 산 같은 바윗덩어리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고려말 이곳으로 유배되어 왔을 때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호까지 삼봉으로 했을 정도로 아꼈다고 한다.

양반님네들의 축첩이 당연시 됐던 때 붙여졌을 법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치마폭 풍성한 시앗과 그를 바라보는 남편, 심사뒤틀린 조강지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 생김새와 이야기가 어찌나 절묘히 맞아떨어지는지 신기할 정도다.

봉이 김선달식 세금과 퇴계의 기지에 얽힌 설화도 웃음이 나온다.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 정선골의 삼봉산이었다고 한다.

장마로 사라진 삼봉산을 찾아다니던 정선의 관리들이 도담삼봉을 보고 삼봉산이 떠내려 온 것이라며 요즘으로 치면 관람료를 내라고 했다는 것.

그 후 단양에서는 정선에 세금을 냈는데 잠시 단양군수로 부임했던 퇴계가 정선관리에게 "도로 가져가지 않으려면 관리비를 내라"고 한 뒤부터 세금얘기가 쑥 들어갔다는 얘기다.

다음은 고수동굴(천연기념물 256호).

석회암동굴로 유명한 이곳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동굴이다.

폭포같은 물이 떨어지는 곳의 마리아상을 비롯 기기묘묘한 형상의 종유석과 석순 등이 신묘하다.

아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 딱 좋겠다.

중국인 단체여행객들로 떠들썩한 것을 보니 외국인 여행코스에도 들어있는가 보다.

패러글라이더들이 오색으로 무리져 떠있는 단양시내를 지나 제천으로 향한다.

내륙의 바다 충주호를 오른편에 낀 시원스런 드라이브코스다.

구담봉 옥순봉 뱃길절경에 가까운 구담봉휴게소를 지나 청풍교를 건너기 전 청풍문화재단지에 들린다.

충주댐으로 물이 차 수몰된 지역의 문화재와 유적을 옮겨 놓은 곳이다.

한벽루(보물 528호), 석조여래입상(보물 546호) 등 보물 2점과 지방유형문화재 등을 이전해 놓은 역사문화의 교육장이다.

시간이 있다면 뱃길여행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청풍교를 건너면 또 하나의 자연절경과 마주한다.

금월봉이다.

잘 생긴 수석작품 같은 바위봉우리다.

칼봉우리가 첩첩이 겹쳐 있다.

설악산 울산바위, 금강산 만물상의 축소판 같다.

제천시가 관광단지로 개발중이다.

길을 달리며 보는 탁트인 충주호반이 시원스럽다.

멀리 월악산 정상의 모습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것 같다.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여인의 얼굴을 옆에서 보는 느낌이다.

여인의 머리 위 돌출된 부분은 원숭이머리 형상이라고 한다.

욕심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보는 넉넉한 여행길.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려고 재촉하지 않는다.

이미 본 곳, 널리 알려진 곳이면 어떤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맞는 그곳은 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