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범신씨가 3년간의 침묵 뒤에 두번째로 창작집을 냈다.

''세상의 바깥''''가라앉는 불빛'' 등 8편의 소설을 담고 있는 새 단편집은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창작과 비평사).

작가는 ''파죽지세의 반문화적 환경''에서 심청이가 인당수에 뛰어들듯 문학에의 사랑 하나로 매달린 작품이니 사심없이 읽어달라고 주문한다.

1946년 충남 논산 태생인 박씨는 전업작가생활 20년 동안 창작집 3권과 장편소설 20권을 발표한 인물.

인기작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는 작품으로부터의 소외를 견디지 못하고 1993년 절필을 통해 문학적 기득권을 반납한다.

박씨는 절필 끝에 1996년 창작집 ''흰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문학평론가 백낙청씨로부터 ''영혼의 음습한 골방까지 파고드는 눈길은 어느 때보다 섬뜩하고,빼어난 기교 저변에는 든든한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작가 이름에 따라다니던 ''대중소설가''란 꼬리표를 마침내 떼어버린 셈.

표제작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는 골프장이 들어선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평화롭던 농촌에 개발바람이 불어닥치면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선 분란이 일어난다.

작가는 간통 누명을 쓰고 재판정에 선 여인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적하던 사람이 자본주의의 덫에 걸려 파멸해가는 과정,그것을 깨닫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 과정을 보여준다.

''내 지금 더러워졌으나,그러니까 더더욱 갑옷을 입고 이제부터 전사가 되겠다''는 여인의 독백은 박범신씨의 말처럼 들린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