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앉아있는 차인표(34)의 모습은 때로는 냉소적이다.

그가 주변으로부터 ''건방져 보인다''는 얘기를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금세 이런 편견은 눈녹듯 사라진다.

오는 29일부터 방영될 MBC 수목드라마 ''황금시대''(연출 이승렬 극본 정성희)촬영장에서 그를 만났다.

추운날씨탓에 자리에 앉자마자 소주 한잔을 가볍게 털어넣는다.

''황금시대''에 임하는 그의 각오는 각별하다.

"선굵은 연기와 드라마속의 메시지가 도드라진 이번 드라마를 연기인생의 전환점으로 삼겠습니다" 화려한 치장과 겉모습에 치중하는 트렌디 드라마는 이제 사양하고 싶단다.

"결혼 후 아빠가 되고나니 드라마 한편 한편과 함께 제 인생의 한 장이 마감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더군요.

이제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정말 하고 싶은 드라마를 할 생각입니다"

일제시대 친일자본과 민족자본의 대결을 소재로 한 황금시대에서 그는 민족자본가의 정신을 계승하는 청년 실업가 박광철역을 선보인다.

박상원이 그와 맞서는 친일자본가로 등장하며 두 사람은 음모로 살해당한 재계 거두의 딸(김혜수)을 두고 한판 승부를 벌인다.

이번 드라마를 위해 지난 8월부터 다른 출연약속을 전부 뒤로 미뤘다.

미국 LA에서의 영화촬영도 내년으로 연기했다.

그가 황금시대에 몰입하는 데는 무명시절부터 인연을 쌓아온 이승렬 PD와의 인연도 적지않게 작용했다.

이 PD는 "연기자 차인표의 강점은 의지력과 적정선을 아는 열정"이라고 평했다.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만든 인터넷방송(www.CNZtv.com)은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그는 시나리오 작가와 연출가로 변신한다.

요즘은 자신이 살고 있는 청담동의 골목에서 만난 한 부녀의 삶을 30분짜리 드라마로 만들고 있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고물을 줍는 부녀의 모습에서 그는 적지않게 충격을 받았다고.딸은 학교도 다니지 않는 9살짜리 소녀다.

"외제차와 호화주택이 넘쳐나는 그 동네에서 소녀는 우리사회의 투명인간이었던 셈이죠.관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으니까요"

''국희''에 아역으로 출연했던 박지미양을 캐스팅해 2주 후에는 촬영을 마칠 생각이다.

34세에 연기인생의 전환점을 찾겠다는 차인표.그에게는 연기자에게 가장 소중한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있었다.

"주인공이든 조역이든 소품처럼 드라마속에 철저하게 녹아드는 연기자가 돼야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