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석하는 2000년 서울 국제문학포럼이 26일부터 3일간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 컨퍼런스홀에서 열린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주최하는 이번 행사에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알바니아 소설가 이스마일 카다레,노벨문학상 수상자 월레 소잉카,일본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 등이 참석한다.

한국에서는 김우창 대회조직위원장 등 60여명의 학자가 토론 및 발제자로 나선다.

''경계를 넘어 글쓰기-다문화 세계속에서의 문학''을 주제로 하는 이번 행사의 주요 발제문을 요약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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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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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크리틱(transcritic)''은 두 부분,즉 칸트와 마르크스에 관한 고찰로 돼 있다.

이는 윤리학 영역과 정치경제학 영역 사이의,칸트의 비판과 마르크스의 비판 사이의 약호전환(transcoding) 공간을 형성한다.

이는 칸트를 마르크스를 통해 읽고 마르크스를 칸트를 통해 읽으려는 시도다.

19세기말 이후 많은 사상가가 둘을 연관지으려 노력했다.

나의 관심은 칸트와 마르크스한테 공통되는 비판(critique)의 중요성을 되찾는 데 있다.

이 비판은 비난의 장치가 아니라 검토,그것도 상당히 정교한 자기 검토에서 시작되는 무엇이다.

내가 칸트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이런 국면에서였다.

칸트의 저작은 일반적으로 형이상학의 비판으로 알려져 있는데,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엄밀하게는 형이상학의 고유한 기능을 되찾는 작업이 1차적이다.

나는 공산주의라 불리는 형이상학을 재건하려는 기획의 일환으로 칸트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산주의는 칸트의 사유에 내재하는 도덕적 계기 없이는 사유될 수 없음을 알았다.

정확히 이런 의미에서 허만 코언은 칸트를 독일 사회주의의 진정한 시조로 간주했다.

이 지점에서 칸트와 마르크스는 서로 교차한다.

마르크스에게 공산주의는 ''정언적 명령'',즉 더없이 실천적이고 도덕적인 것이었다.

그는 이런 태도를 평생 동안 유지했는데,다만 말년에 실현 가능케 하는 역사적·물질적 조건들에 대한 이론적 연구에 노력을 집중시켰다.

그러는 동안 주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도덕을 비웃고 ''역사적 필연성''과 ''과학적 사회주의''를 주장하더니 결국에는 일종의 노예사회를 만들어냈다.

이는 칸트가 ''이성 일반의 모든 월권들''이라고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와 소비자가 교차하는 트랜스크리틱한 계기를 파악하는 데도 실패했다.

칼 폴라니에 따르면 자본주의(시장경제)는 일종의 암이다.

농업공동체와 봉건국가 사이의 틈새에서 태어난 자본주의는 그 세포들을 그 자신의 생리에 맞게 변형시켰다.

소비자로서의 노동자,그리고 노동자로서의 소비자의 초국적인 연계망은 말하자면 항암성 세포들의 문화다.

그것을 제거하는 자본과 국가는 자기 자신의 생산 조건들을 먼저 제거해야만 한다.

내가 읽은 바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이런 문화의 창출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다.

자본을 종식시킬 수 있는 입장전환의 계기들이 파악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러므로 이런 계기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트랜스크리티시즘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