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공연된 국립오페라단의 "마농 레스코"는 최근에 보기 힘든 고품질의 작품이었다.

주역들의 노래와 합창,코리안심포니의 연주는 한지에 은은하게 배어든 수묵같은 앙상블을 전해주었다.

연극을 방불케하는 가수들의 연기와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는 연출도 돋보였다.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는 교향악적인 맛을 느끼게 할 정도로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두터운 작품.

자칫 가수들의 노래가 관현악의 사운드 속에 묻혀버릴 수도 있는 곡이다.

지휘자 최승한은 오케스트라의 음량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해 가수들의 노래와 균형을 이루려고 애쓰는 듯 했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그윽하고 유연한 연주,경쾌한 1막과 비극적인 후반부의 색채감을 잘 대비시킨 연주로 큰 박수를 받았다.

이소영의 박진감 넘치는 연출도 눈길을 끌었다.

"각 막이 닫힐 때마다 강렬한 이미지의 선을 제시해 시각적 효과를 높이겠다"는 그의 연출의도가 극적 긴장감을 살려나갔다.

마농과 데그뤼가 도망치는 장면(2막),레스코가 경비병과 격투를 벌이는 장면(3막),마농이 사막위를 데굴데굴 구르는 장면(4막)이 그랬다.

물론 전형적인 연출에서 조금 벗어나 연출자의 개성을 살리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지 않은 점이 아쉽기는 했다.

9일 공연에서 마농역을 맡은 김향란(소프라노)은 원숙한 소리를 바탕으로 적절하게 감정을 처리해 내는 노련함을 보였다.

데그뤼역의 테너 이현은 비극으로 치닫는 2막부터 우람한 체격에서 나오는 선이 굵은 목소리와 연기를 보여주었다.

연속되는 고음부분에서 탁음이 나오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데그뤼의 격한 감정의 파고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물결처럼 밀려드는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는 1막에서는 조금 톤을 낮춰 부드러운 프레이징으로 이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레스코역의 바리톤 최종우는 이와 달리 1막에서는 페이스를 조절하는 모습이었다.

2막부터 음량을 늘려 자신의 장점인 둥글고 꽉찬 소리를 유감없이 선보였다.

< 장규호 기자 seinit@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