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철학자는 "시간을 발견한 것이야말로 인류 최대의 업적"이라고 말했다.

시간의 발견으로 비로소 역사 문학 철학 종교가 생겼고 이를 통해 인류는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수많은 동.서양 철학자들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질문하지 않고 있을 땐 잘 알고 있다고 느끼지만 질문하는 순간 오리무중에 빠지게 되는 것"이 시간이다.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와 예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 교수 등 과학.예술.역사.철학.문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24명이 함께 펴낸 "시간 박물관"(김석희 옮김,푸른숲,4만9천원)은 "시간"이란 창을 통해 바라본 인류 문명사다.

인류가 시간을 어떻게 지각하고 있으며 문화별로 시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비교문화적 시각에서 탐구했다.

책은 새 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와 국립해양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시간이야기"특별전의 도록으로 만들어졌다.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달력에서부터 티치아노의 우의화,살바도르 달리의 일그러진 시계그림,허블 망원경이 최근 포착한 우주사진에 이르기까지 4백여점의 유물.작품 사진이 풍성하게 수록돼 있다.

"우리는 시간을 측정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는 에코의 서문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1장 "시간의 창조"에서 창조신화를 통해 문화별로 다양한 시간에 대한 견해를 살핀다.

창조신화에서 시간이 맡고 있는 역할을 확인하고 그것이 우주의 운행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어떤 식으로 뒷받침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2장 "시간의 측정"에선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류가 시간을 체계화하기 위해 시도한 노력과 그 결과물인 달력 및 시계의 발전사를 보여준다.

3장 "시간의 묘사"는 예술가들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는지를 다뤘다.

고대 그리스.로마 유적과 중세의 알레고리화를 해석하고 인상주의.초현실주의 화가들이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허무함을 묘사한 미술의 역사를 정리했다.

중세를 거쳐 "시간 영감"으로 발전한 그리스.로마 신화의 크로노스와 "장수의 신"으로 불리는 중국의 "수로"(壽老),덧없음을 상징하는 "바니타스"의 형상화가 눈길을 끈다.

유기체의 생명을 조절하는 생물학적 시계인 심장의 박동,노화 등 또 다른 유형의 시간을 4장 "시간의 체험"에서 분석했다.

마지막 "시간의 종말"은 여러 문화가 시간의 종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정리했다.

결론은 시간의 종말을 모든 것의 종말로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

시간이 끝난 뒤에도 무언가는 살아남을 것이라 믿는 경향이야말로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획일적인 시간의식에 휩쓸려 속도와 시간의 노예로 전락한 현대인에게 시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