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사기다!"

1984년 백남준이 34년만에 고국땅을 밟은후 터뜨린 일성은 국내 예술계에 적잖은 파문을 던졌다.

예술의 지고한 속성도 모른채 함부로 입을 놀려 순수한 예술가들에게 폐를 끼쳤다는 반발이 거셌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뜨끔했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그로부터 16년.

백남준은 얼마전 당시 진의를 묻는 질문에 "예술은 잘하면 사람을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진지한 표정을 내세워 독자들을 눈속임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말한 사기는 에고(ego)의 예술이다.

나는 지금도 폼잡는 예술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예술적 실천은 예술의 독재 또는 독백예술"이라는 목소리를 높이는 백씨는 지난 5월초까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렸던 개인전시회로 구겐하임 전시사상 여러 기록을 갈아치우며 그 위상을 다시한번 되새기게 했다.

"백남준 그 치열한 삶과 예술"(이용우,열음사,1만2천원)은 "인간 백남준"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미술평론가이자 백씨의 지기인 저자는 머리말에서 "그의 이름에 덕지덕지 따라붙는 상품같은 라벨을 떼어내고 그의 예술을 이해하는 진정한 독자층을 넓히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백남준에 대한 예술에 관한 진지한 논의나 미학적 공과가 아닌 과거사를 들먹이는 마구잡이식 평가에도 일침을 가한다.

책은 일제시대 거상의 아들로 태어난 백남준이 전위음악가로,세계 최고의 하이테크 예술가로 서기까지의 여정을 따라나간다.

독일 유학시절 머리에 먹물을 묻혀 글씨를 쓰거나 관객의 넥타이를 가위로 싹둑 잘라내는 과격한 퍼포먼스로 "동양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던 일,베니스 비엔날레장에서 특유의 거지패션때문에 노숙자로 오인받아 쫓겨날 뻔 했던 일,자신의 활약이 보도된 신문을 거들떠보지 않는 척 하면서 새벽일찍 몰래 나가 죄다 사들였던 일같은 우여곡절들이 재미있다.

백씨가 스승으로 꼽는 음악가 신재덕과 존 케이지,예술적 배필인 샬로트 무어만,동료이자 아내인 쿠보타 시게코,전위 예술가 조셉 보이즈와의 녹진한 인연도 담긴다.

구겐하임 전시에 필요한 1백80만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이러저리 뛰며 맘고생을 한 후 "자본가들이 돈을 들고 내게 어정어정 걸어오도록 만드는 비법을 연구해야겠다"고 털어놓은 사연도 눈에 띈다.

존 케이지가 "백의 재담을 듣지 못하는 게 아쉬워 죽지도 못하겠다"고 까지 했을만큼 그의 언어감각은 탁월하다.

한국어 영어 독어 일어 프랑스어 5개국어에 능통하지만 정작 의사소통엔 어려움이 많다.

일단 한국어는 1950년 일본으로 유학간 시점에서 흐름을 멈췄다.

"내 작품은 도매로 한점에 ㅇㅇ정도 하는데 소매값은 항차 가치를 분별하사 알아서들 결정해야 할 거외다"하는 식이다.

영어도 만만치 않다.

"fun"을 "환"이라 발음하는 일본식 발음은 그의 영어를 듣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게 만든다.

몇년전까지 그의 전화 자동응답장치에선 이런 메시지가 나왔다.

"디스 이즈 남준 백,플리즈 리브 어 메시지,슬로리 베리베리 슬로리"

하지만 백남준은 첨단기술로 창조한 이미지 언어로 국경과 세대를 초월한 공감을 얻으며 그 어떤 미려한 언어보다도 강력한 소통력을 과시한다.

그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들은 예술인이기에 앞서 자연인인 백남준의 매력을 한껏 살려놓고 있다.

<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