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임영조(57)씨가 시를 쓰며 칩거하는 이소당.

서울 사당동 총신대 지하철역에서 상도터널쪽으로 접어들면 샛길이 여러 가닥 나온다.

지도에도 없는 길.

전화로 들었던 약도를 떠올린다.

"신세계약국 돌아 세진당약국 쪽으로 남광약국까지 오세요. 바로 그 옆 건물입니다"

약국 세군데를 지나 이소당에 도착한다.

열두어평쯤 돼보이는 집필실.

그는 이곳으로 출근해서 하루종일 책을 읽고 시를 쓰다 가끔씩 강의를 나간다.

열린 창틈으로 이른 봄볕과 골목의 생선장수 확성기 소리가 함께 흘러든다.

이소(귀로 웃는다)는 그의 호다.

서라벌예대 2학년 때 미당 서정주 선생이 "부처님처럼 귀가 크고 잘 생겼는데 웃을 땐 귀만 보인다"며 지어준 것이다.

미당이 정음사판 "시학입문"(데이 루이스 저,1958년) 속표지에 만년필로 써준 글자를 그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이소당에 들어앉은 7년.

이곳에서 "귀로 웃는 집"이라는 시집도 냈다.

그가 등단 30주년에 펴낸 신작시집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민음사)는 그야말로 "이소"의 이름에 값하는 결실이다.

그는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을 받았지만 "아직도 습작기처럼 가슴이 울렁거린다"며 겸손해한다.

"지도에 없는 섬"에 스스로 갇혀 "귀로 웃고 듣고 말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씨의 말을 빌리면 "탈속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이번 시집에는 세상의 겉옷을 벗어버린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관조와 "가득함을 죄다 비워낸 자의 넉넉함"이 깃들어 있다.

그는 인간과 사물의 틈에서 삶의 진경을 본다.

"금간 보도 블록 사이로 촉을 내민/풀씨가 더 눈물겹고" 환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말의 틈은 흠이라지만/사람의 흠은 그의 생을 정독할/자상한 각주 같은 것이니/더러는 틈을 보이며 살 일이다/밖으로 나가려면 문을 열듯이/안으로 들이려면 틈을 내줄 일이다"("틈"부분) "평생을 무슨 공부로 수신했길래/시뻘건 연옥속에서도 고등어는/열반에 들듯 태연할 수 있을까/(중략)/그래서 이름까지 고등어?"("고등어"부분) 생의 무게를 덜어주는 일은 때로 자연의 몫이다.

시인이 늦가을 산에서 "저마다의 무게를/땅 위에 반납하는" 낙엽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그런 순간이다.

"가벼워진 자만이 업을 완성하리라/허나, 깨끗하게 늙기가 말처럼 쉬운가/아하! 무릎 칠 때는 이미 늦가을"("늦가을 문답"부분) 자신을 떨구는 것만이 다는 아니다.

시인은 과천 살림집 앞뜰에서 환하게 핀 살구꽃과 만난다.

그것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환생의 매개체다.

"꽃상여 한 채"가 "간밤 꿈에 어머니가 뵈더니/살구꽃 가마 한 채 보내신 걸까"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곧 우주의 심연까지 가닿는다.

"가난도 약으로 살다 가신 어머니/이제는 형편이 좀 피셨나 보다/후광처럼 너무 곱고 화사해/저 가마 타고 저승까지 가보고 싶다/사람 벗은 한 그루 살구나무로/하르르 작별하는 꽃잎 한 장 무게로"("앞뜰의 살구나무")

이쯤 되면 시는 노래를 넘어 경전이 된다.

그 갈피에서 지도에 없는 길들이 또 뻗어나온다.

연작 "그대에게 가는 길"은 그래서 아직도 미완이다.

그대는 누구이며 길은 어디로 향하는가.

그는 이소당에서 "혹시 그리운 사람 올까? 가끔 귀 열어놓고" 기다리지만 그리운 사람은 커녕 "그대"도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가파른 세기말을 건너뛰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고뇌와 성찰을 이 한권의 거푸집에 채우는"동안 그는 늘 바깥으로 귀를 열어놓았다.

해질 무렵 시인과 함께 이소당을 나설 때도 세상은 소음으로 가득하다.

지상의 약국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아픔들.

그 상처의 소리 가운데로 "아픈 귀" 하나가 걸어간다.

"비록 남루한 집이나마 나처럼 등이 시린 사람들이 두루 찾는 이랫목같이 따뜻한 시의 세상이 빨리 왔으면..."

고두현 기자 kdh@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