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명인(40)씨가 장편 "집으로 가는 길"(문이당)을 펴냈다.

2대에 걸친 비극적 러브스토리를 제주도의 토속신화와 맛깔스럽게 버무린
작품이다.

그는 바람많은 제주바다의 밑그림 위에 이복 남매의 애절한 사랑을 한폭씩
겹쳐놓는다.

제주 방언과 신화, 운명의 엇갈림과 사랑의 비극, 한의 맺힘과 풀림을
따뜻한 어법으로 풀어낸다.

소설은 미완으로 끝난 "청비"와 "홍로"의 사랑에서 시작된다.

홍로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피해 구덕혼사(어릴 때 하는 정혼)로 맺어진
처녀 청비를 두고 야반도주했다.

홍로의 씨를 받은 청비는 홀로 딸 "채운"을 낳아 기르다 한맺힌 생을
마감했다.

채운은 결혼해 딸까지 낳지만 신들린 사람처럼 해녀 그림에만 몰두하다
이혼하고 제주로 내려와 있다.

그녀 앞에 홍로의 아들 "강림"이 나타나면서 얘기는 급반전된다.

이복남매라는 사실을 모르는 둘은 사랑에 빠지고 채운은 아이까지 갖는다.

하지만 30여년만에 고향을 찾은 홍로에 의해 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홍로가 지난날 청비에게 줬던 목걸이를 채운의 딸에게서 발견한다.

채운의 카페에 걸린 그림의 주인공이 청비였다는 걸 알고 전율한다.

그 순간 "태 사른 땅 버리고 시작한 서울생활 삼십년"동안 한번도 입밖에
내지 않은 슬픔이 물너울로 출렁댄다.

작가는 사랑했지만 이뤄질 수 없었던 홍로와 청비, 한 핏줄인줄 모르고
맺어진 강림과 채운의 슬픈 대물림을 설화와 현실이라는 삶의 이중주로
승화시킨다.

"신화의 주인공들에게 인간의 옷을 입혀 세상에 내보냈지요. 이름도 그들
에게 빌려왔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 지명이 홍로였대요. 청비는 농사의
여신 자청비 이름입니다"

홍로가 떠난 뒤 청비의 뱃속에서 자란 채운과 강림이 떠난 뒤 채운의
뱃속에서 자라는 아이.

그 모든 것을 잇는 고리는 청비라는 여인의 보이지 않는 힘이다.

그것은 작품 곳곳에 웅숭깊은 가락으로 흐르는 제주민요의 주술적 힘과
맞닿아 있다.

굴곡진 삶의 구비를 지나 사랑과 생명의 시원인 제주바다로 돌아가는 여정에
제목 "집으로 가는 길"의 의미가 함축돼 있다.

이씨는 97년 "사랑에 대한 세가지 생각"으로 제1회 탐라문학상을 받았다.

지난해 장편 "아버지의 우산"으로 주목받았다.

현재 탐라대 교수인 남편과 서귀포에 산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