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문구(59)씨의 요즘 별칭은 "열혈청년"이다.

한곳에 진득하게 있기 좋아하고 뭘 하나 붙들면 뜸을 오래 들이는 천성과
달리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

지난 연말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맡아 문인복지 문제와 한국문학
청사진 그리기에 여념이 없는 중에도 산문집 "줄반장 출신의 줄서기"
(학고재)를 펴냈다.

다음달에는 "유자소전" 이후 7년만에 새 소설집을 출간한다.

경기대 창작강의도 거르지 않고 있다.

오래된 문우들이 "환갑 앞두고 회춘이라... 무슨 묘약이라도 있나?"하고
부러워하면 그는 특유의 웃음으로 퉁을 준다.

"요즘 나이 세는 사람 어디 있간디. 자꾸 젊어져야제"

그가 3년만에 내놓은 산문집은 혼탁한 사회에 죽비소리같은 깨우침을
던져준다.

산문이란 소설보다 작가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는 장르다.

그의 육성은 나직하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깊고 울림이 크다.

그는 자신을 "줄반장 출신의 보통사람"이라며 겸손해한다.

"반장이나 부반장 자리는 언감생심 쳐다도 못 보기 마련이었지만 줄반장
자리 하나는 아무 노력 없이도 저절로 차례가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알량한
줄반장 출신이란 걸 어떻게 알았는지 나는 어느 줄이냐고 묻는 이를 지금도
심심치 않게 만나곤 한다. 줄은 참 길기도 하고 질기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에서 줄은 여러가지 뜻으로 쓰인다.

줄만 해도 한 가닥이 아니다.

"줄서기를 잘해야 하는 줄도 있고, 줄을 잘 놓아야 하는 줄도 있고, 줄이
잘 닿아야 하는 줄도 있고, 줄타기를 잘해야 하는 줄도 있는 것이 아닌가"

줄반장 출신의 줄서기는 번번이 서툴다.

자기 줄이 어느 것인지, 따로 있는 것인지조차 모른다.

그에게 줄이 있다면 그것은 문학이라는 생명줄 하나다.

그가 작가회의 이사장을 맡은 이후 문단의 "보이지 않는 줄"이 없어진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전에 창비파(장과과비평)니 문지파(문학과지성)니 해서 나뉘었던 문인들이
너나없이 작가회의로 몰려들고 있다.

그가 "줄"대신 "마당"을 펼쳐놓은 것이다.

나서기 싫어하고 뒤에서 궂은 일만 도맡아하던 겸양과 공손의 미덕 때문에
문인들이 그를 줄반장으로 추대한 것일까.

배고픈 글쟁이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줄반장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 오지랖 넓어지는 것도 마다 않는다.

"권력지향적인 사람들이 부귀영화를 향해 줄대기에 급급하는 동안 문인들은
문학이라는 삶의 외줄 위에서 위태로운 생활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문화예술도 돈 되는 것만 중시하지 않습니까. 순수문화는 설 자리를 잃었어요
그래서 문화예술인 복지보험이나 공제조합 같은 것을 만들어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까 하고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그는 지난 정월대보름을 시골집에서 보냈다.

충남 보령 장산리.

그 유명한 "관촌수필"의 관촌에서 시오리쯤 떨어진 곳이다.

"매월당 김시습"과 "유저소전"도 이곳에서 썼다.

일가붙이가 살던 초가집에 자꾸 물이 새자 건설업자 신홍식씨가 공사비
한푼 안받고 아예 새집으로 단장해준 집필실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가난한 문인이 받은 천문학적 가치의 사회보장"이다.

이곳에서 그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고 겨울 들판의
볏짚에게 세상 이치를 배웠다.

"갈대가 강해 보이고 억새가 억세어 보이지만 볏짚은 신분이 다르다. 속성을
인간에 비추어 말한다면 대체로 남에 대하여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예의 바른 태도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겸양과 공손은 얼핏 보아서
허름하게 비칠 수도 있다. 오만불손이 행세하는 세태라면 한결 더할 수도
있다. 비록 허름하게는 비칠망정 부드럽고 따뜻한 저 볏짚 편을 들어 신분
상승보다 인격상승부터 꾀하는 쪽이 더 낫지 않을는지"

그는 한마디로 "줄대기에 급급하지 말고 볏짚의 미덕부터 배우라"고
강조한다.

세속의 잡다한 연줄로부터 자유로울 때 진실로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빛줄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생각은 금강산 첫 뱃길에 오른 뒤 한국경제신문에 연재한 "금강산
기행"에도 그대로 투영돼 있다.

매주 월요일 오후.

마포 애오개역 부근의 작가회의 사무실에 가면 젊은 문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염화시중같은 미소로 대화를 나누는 그를 만날 수 있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