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비 내리고 있다.

이 세상 풍경들은 모두
푸르스름한 모기장 속에
갇혀 있다.

인간이 아무리
빗방울을 잘게 썰 수 있다 한들
이런 조화를 이룰 수 있으랴.

물방울까지 잘게 써는
그는 과연 누구인가.

박성룡(1932~) 시집 "풀잎"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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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비 내리는 모습을 시인은 세상 풍경들이 모두 푸르스름한 모기장 속에
갇혀 있다고 감각적으로 포착한 다음, 다시 안개비를 잘게 썬 빗방울로
분석한다.

이같은 감각적 포착은 자연에 대한 경탄과 그 자연을 창조한 존재에 대한
외경으로 이어진다.

"물방울까지 잘게 써는/그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는 끝나지만
릴케가 "가을"에서 말했듯 그 역시 "두 손으로 받아내는 어느 한 분이 있다"
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신경림 시인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