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시선은 맑고 소박하다.

아침해가 얼굴을 내민 산자락에서, 운동장에서 뛰고 구르는 아이들에서,
조용히 피어있는 산벚꽃에서.

시인은 주변의 모든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감동에 겨워한다.

영화를 볼때도 마찬가지다.

작품속에서 빛을 발하는, 때로는 꼭꼭 감춰진 덕목들을 일일이 들춰내며
희열을 느낀다.

김씨가 펴낸 영화 에세이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이룸, 7천9백원)는
그가 영화를 "구경"한후 써내려간 영화 일기다.

구경이란 표현에서 짐작했겠지만 책은 전문적인 영화용어로 구성된 평론집이
아니다.

이론서에서 끄집어낸 도식적인 틀에 영화를 꿰맞추거나 장면 장면을
분석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영화라면 손뼉을 치면서 즐거워하고 "영화없이 무신 재미로 살긋냐"
라며 혼잣말할 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시인이 영화를 보고 난 느낌과 영화를
실마리로 더듬어낸 자신의 경험들을 들려준다.

시인은 영화마다 현실 세계로 통하는 작은 문을 찾아낸다.

"쉬리"를 두번 본 그는 어려 살던 동네 냇물에서 놀던 물고기 "가새피리"
(쉬리)를 떠올린다.

그의 추억은 예쁜 쉬리들이 남북 어디서나 만나는 날을 꿈꾸는 바램으로
이어진다.

"나라야마 부시코"를 보면서는 어린시절 동네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모여
삼베로 자신들이 입을 수의를 짓던 담담한 손길을 기억해내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살핀다.

"아름다운 시절"에 등장한 운동회 사진은 그가 천담분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운동회 장면과 오버랩된다.

시인에게는 또한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잘만든 영화다.

그러기에 브루스 윌리스의 "다이하드" 시리즈는 훌륭하거나 좋은 영화는
아니더라도 인상깊은 영화로 첫손에 꼽힌다.

"박하사탕"에서 가슴저리는 감동을 맛본 시인은 시대의 아픔과 정면으로
마주한 감독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애정섞인 질타도 서슴지 않는다.

"편지"에 대해서는 매스컴에 속은 듯한 느낌에 마냥 분해한다.

"투캅스"는 "투"까지만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권력은 잡아 봐야 알고 영화는 극장문을 열고 나와 봐야 결판이 난당게"
어려운 말 없이도 영화, 나아가 삶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으로 말하는
그의 영화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재미있다.

< 김혜수 기자 dearsoo@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