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학은 야전병원에서 나왔다"

"19세기에 발견된 공룡 화석은 진화론을 낳고 진화론은 나치즘으로
이어졌다"

"모든 발명의 뒤에는 섬광같은 착상의 불꽃이 있었다"

과학사는 인류 사고의 변천사다.

지난 세기에 새로운 지식의 발견이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듯이 코페르니쿠스
적 사건은 21세기에도 계속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가 어떻게 뒤바뀔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출간된 "우주가 바뀌던 날 그들은 무엇을 했나"(제임스 버크 저,
장석봉 역, 지호, 1만9천원)는 인류문명을 뒤집은 사건들을 새롭게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기억의 시대"에서 "기록의 시대"로 바뀐 인쇄술의 등장, 자연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환경을 지배하기 시작한 증기기관 발명 등 사회적 혁명의
순간들을 문명사적으로 분석한다.

그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이전에 인쇄술을 선보인 우리나라의 14세기
상황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1126년 이자겸의 난으로 왕궁과 도서관의 책이 소실되자 이를 복원시키기
위해 1313년 금속활자를 발명했으나 인쇄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는 바람에
그 기술이 전혀 보급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고 적고 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의 의의도 현대 외과술의 탄생과 연계시켜 파악한다.

야전병원의 환자들에게 수의 개념을 적용하고 확률론을 접목한 것이 통계학
이고 이것이 임상의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아라비아인들의 광학이론 발견은 전유럽의 세계관을 변화시켰다.

거울에서 원근법이 튀어나오고 기하학의 등장으로 천문학 연구와 신대륙
탐험이 활기를 띠었다.

뉴턴과 다윈은 기존 학문의 체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자신들의 발견에 대해
견디기 힘들만큼의 중압감을 느꼈다고 한다.

실제로 진화론은 나치즘의 선민의식으로 변형되기도 했다.

앞으로 제2, 제3의 뉴턴과 다윈이 나타난다면 그들도 당혹스러워 할 것이다.

여태까지 알고 있던 진실을 뒤집는 착상이란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역발상의 지혜가 인류 역사를 바꾼 원동력이었다.

변화의 순간으로 가득 찬 역사는 새로운 데이터에 의해 끊임없이 수정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인간이 밝혀낸 것들이 지극히 제한적이고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미래 과학의 탐구영역은 과거보다 더 넓고 무한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직 "미완의 진리"에 불과한 과학적 현상을 바탕으로
인류가 찾아야 할 "참 진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