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

겨울에 살게 하소서.
여름의 열기 후에 낙엽으로 날리는
한정 없는 미련을 잠재우시고
쌓인 눈 속에 편히 잠들 수 있는
당신의 긴 뜻을 알게 하소서.

마종기(1939~) 시집 "그 나라 하늘 빛"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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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밖에 몰아치는 폭설을 두려워하고 원망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겠지만,
"쌓인 눈 속에 편히 잠들 수 있는 당신의 긴 뜻"을 알고 나면 경건하고
겸허해지지 않을 자 누구 있으랴.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는 사람,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어지럽고 소란스러운 오늘, 이 시가
주는 울림은 각별하다.

"겨울에 살게 하소서"의 겨울을 자연의 겨울로 한정해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신경림 시인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