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은희경(40)씨의 새 장편소설 "그것은 꿈이었을까"(현대문학)와 배수아
(34)씨의 창작집 "그 사람의 첫사랑"(생각의나무)이 함께 나왔다.

이들 작품을 읽다보면 세기말의 쓸쓸함과 밀봉된 희망, 피학적인 아픔이
한꺼번에 만져진다.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꿈"과 마음속의 "님"은 여전히 먼 곳에 있고 현실도
그만큼 황폐하다.

은희경씨의 작품은 속도감 있게 읽힌다.

그러나 그 속에는 혼곤함이 짙게 배어 있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시이소 중간에서 그는 기우뚱거리는 삶의 불균형을 잰다.

사랑은 흔들리는만큼의 불안을 동반하는 것일까.

작가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생의 외줄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몸이 기우는 반대 쪽으로 쥘부채를 펴라고 은유적으로 권한다.

주인공 "준"은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고 보험료로 살아간다.

그는 굴절된 과거만큼 냉소적이고 자기 표현도 잘 하지 않는다.

악몽을 자주 꾸는 것도 이때문이다.

절친한 친구 "진"과 의사고시를 앞두고 지방 고시원에 들어간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같은 꿈을 잇달아 꾼다.

그러다 꿈결인듯 한 소녀를 만나게 되고 고시원을 나올 때 그녀를 데리고
나온다.

하지만 그녀는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선배의 병원에서 수련의로 일하던 그는 안과치료를 받으러 온 소녀를 다시
만나 자신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걸 깨닫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또 사라진다.

소녀를 찾을 수 없어 프라하로 떠났다가 서울로 돌아온 그는 "진이 약혼식을
이틀 앞두고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비보를 듣는다.

소설은 그가 진의 약혼녀와 결혼한 뒤 꿈속의 소녀를 좇다가 자동차 사고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며 끝맺는다.

현실인 듯한 꿈과 꿈인 듯한 현실.

작가는 그 허상의 두 층위를 몽환적인 그림으로 겹쳐 보여준다.

배수아씨의 창작집에는 피학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은 모두 사회로부터 버림받거나 스스로 추락중이다.

그들의 배후에는 일탈과 파격, 섬뜩한 비애가 차갑게 펼쳐져 있다.

수록된 10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은둔하는 북의 사람"이다.

북한의 천재 과학자가 남북 실력자의 비호 아래 극비 프로젝트를 위해 서울
로 온다.

남한은 그 대가로 평양에 연구자금을 지원한다.

이름을 "김무사"로 바꾼 그는 양쪽 모두에게 필요한 인물이자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말아야 할 가상인물이다.

그는 양쪽 정권의 암묵적인 기대와 달리 몇년동안 "전향"하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한다.

거대한 권력의 회오리가 상층부에서 몰아치는 동안 태풍의 눈에 들어온 그는
"한심할 정도"의 순수함 때문에 양쪽으로부터 버림받는다.

그를 데려오고 "보호"하던 정보원 박은 더 중첩적인 인물이다.

박은 그를 버리는 과정에서 최일선을 담당한다.

그러면서 불륜관계인 타이피스트의 결혼을 파멸로 몰아가고 그녀를 거리로
내몰기까지 한다.

작가는 "그렇게 우리들 인생은 어느 순간에 한꺼번에 붕괴된다.

그 순간이 조금 이르게 찾아오거나 조금 늦게 찾아올 뿐"이라는 얘기를
냉정한 톤으로 전한다.

그동안 이미지와 감각 쪽에 무게를 두었던 배수아 소설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다른 주인공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사랑은 더 냉소적이다.

행운 대신 불행만 가져다 주는 "선인장 가시"("병든 애인"), 체제와 사랑
사이에서 정신적 사생아로 방황하는 소년 소녀("그 사람의 첫사랑") 등
저마다 "깨진 유리조각을 손바닥으로 맹렬하게" 쥐고 상처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아프게 그려져 있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