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정록(35)씨가 세번째 시집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문학과지
성사)를 펴냈다.

그의 시집에는 자연과 몸, 사물과 영혼이 한데 어우러진 생명의 시학이
촘촘하게 배어 있다.

그에게 자연은 우주의 겉옷이 아니라 몸의 중심이다.

젯상에 올릴 계란 껍질을 벗기면서도 그는 생명의 깊이를 짚어낸다.

"삶기 전까지 끊임없이 꿈틀거린 까닭"에 "노른자가 한가운데에 있질 않다"
는 걸 발견하는 순간 "중심에서 멀리 나온 보름달을 만난다"고 노래한다.

그는 이어 "하얀 발톱을 들이미는 달빛/그 비척거리는 헛발을/달맞이꽃이
받쳐들자, 식은 땀인 듯/밤안개가 깔린다"("달맞이꽃")고 썼다.

망자를 기리는 제삿날 한 쪽으로 몰려 있는 계란 노른자로부터 햇병아리의
헛발질을 떠올리고 이를 보름달과 달맞이꽃으로 승화시키는 시인.

그의 시는 단순한 생명 예찬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겹눈의 혜안
으로 인해 더욱 빛난다.

"껍질을 깎아낸 감자는 독이 오르지 않는다/씨눈이 떠났기 때문이다 껍질은
오히려 나를 살리는 씨눈의 곳간"("껍질의 힘" 부분) 같은 표현도 그렇다.

그는 위 아래에 따로따로 씨통을 매달고 있는 마늘을 보며 "땅 속 굵은
밑알과/땅 위 송아리 사이에/질긴 끈, 마늘종이 있다"고 일깨운다.

마늘종은 곧 땅의 아래와 위, 어둠과 햇살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다.

그 길은 뜨겁고 또 여리다.

"숯불 위, 석쇠를 거쳐야 생선의 몸에 길이 나지. (...) 창밖, 그것도
석쇠라고, 방충망에 매달려 있는 그믐달이 네가 있는 쪽으로 몸 지지는
밤이야"("석쇠" 부분)

시인은 이렇듯 스스로를 태워 생명의 길을 낸다.

닳고 닳은 삶의 여닫이문도 자유롭게 넘나든다.

"목침은 죽어서도 숨을 쉬지/문이 여닫히는 한, 사람의 얼굴처럼 윤이 나는
문지방/그 아름다운 목침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목침" 부분)

충남 홍성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그는 낡은 형광등을 자신의 몸과 백묵
으로 치환시킨다.

"정년이 되면 형광등만한 거대한 백묵으로 부풀어 있으리라. 밝기는 아직
쓸 만한데 말 많고 시끄러운 게 흠인 오래된 형광등처럼, 가랑가랑
늙어가리라. 나이 거나해도 내 목소리는 호박벌처럼 붕붕대리라"

그의 시는 "그늘보다 땔감이 더 제격인 옹이 많은 나무 한그루" 처럼
사소하면서도 거대하고 낮으면서도 울림이 큰 생명의 노래집이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