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의 나무.8,800원 ]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정치철학을 담은 책 "아직도 시간은 있다"
(김누리 역, 생각의나무)가 출간됐다.

이 책은 그가 전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체커, 작가 귄터 그라스,
사회학자 울리히 벡, 이스라엘 전총리 시몬 페레스 등 26명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부록에는 세계적 석학 위르겐 하버마스와 주고 받은 글이 실렸다.

슈뢰더의 지향점은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이론과 맥을 같이한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장점을 융화시킨 것이 핵심 포인트.

맹목적 자유와 평등에 집착하지 말고 국민이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이념에 저울추를 달아주자는 것이다.

그는 이를 실현할 "제3의 모델"을 제시한다.

우선 미국 모델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라인형" 독일 모델을 보여준다.

또 동아시아 모델과 대비시킴으로써 미국형에 치우친 한국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슈뢰더의 철학은 노동.경제 분야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는 경쟁력 강화를 통한 사회복지 체제유지를 정책기조로 삼고 있다.

그러나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 아래 자행되는 사회정의 훼손에는 단호히
맞선다는 입장이다.

그는 "사회적 연대야말로 사회적 경쟁력의 가장 확고한 토대"라며
사회복지체제의 균열은 사회적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결국에는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위협한다고 본다.

그래서 실업수당 지출을 늘리는 것보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정상적인 소득이 이뤄지도록 하자고 강조한다.

그가 비교한 "라인 모델"과 "동아시아 모델"은 어떤가.

"동아시아 모델"은 "박정희 방식"의 개발독재형에 가깝다.

그는 독일경제의 성공비결을 "참여민주주의형 원리"에 기초한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찾는다.

아직도 참여윤리보다는 포기윤리가 지배하는 우리 현실을 비춰볼 때 그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대중 정부가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는
있지만 실제 내용은 여전히 미국 모델에 치우쳐 있다는 점에서 각별히
참고할 만하다.

그가 비판하는 미국모델은 한마디로 "팔꿈치 사회".

다른 사람을 밀어내야만 자신이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는 치열한 경쟁
사회다.

그는 "개인적 공간적으로 폭넓은 자유가 인상적이나 빈곤은 충격적"이라고
비꼰다.

따라서 그는 스탈린식의 도식적 평등과 미국식의 허구적 자유를 동시에
극복하고자 한다.

평등에 탄력을 불어넣고 자유에 실체를 부여함으로써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적 재분배"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약육강식과 빈부격차 등이 내재된 미국 모델과 달리 독일 모델은 투명한
조세체제를 통해 이익과 부담을 사회적으로 나눔으로써 결국 사회구성원
모두가 안정감을 얻으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제3의 모델"이다.

부록에서 하버마스는 오늘의 세계를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현상을 "경제의
세계화"라며 이것이 국민국가를 약화시키고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범세계적 연계망을 수용하면서 제한하는 초국가적 정책"을
제안한다.

이에 대해 슈뢰더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에는 공감하면서도 "오직
참여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적 연대로서 새로운 사회를 이뤄나갈 수 있다"며
국민국가 약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 고두현 기자 kd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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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더가 독일경영자총협회장 디터 훈트에게 보낸 편지

"우리 경제가 성공한 이유는 "라인형 모델"때문이지요.

동아시아의 "호랑이 경제"는 별로 민주적이지 못한 국가가 노동대중에게
그들의 정당한 몫을 강제로 포기하도록 하는데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면서 공동결정제,
연대원칙, 민주주의, 사회적 합의에 따른 참여윤리를 확립했죠.

참여윤리의 장점은 경영학적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기업의 성공에 관심을 갖는 노동자들이 훨씬 나은 성과를 올립니다.

잘 교육받은 능동적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사회 최대 최고 자본입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