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괴짜 영화감독 비탈리 카네프스키의 "발레르카 3연작"중 두번째
작품인 "눈오는 날의 왈츠"가 주말 개봉된다.

3연작은 러시아 동북부 스촨시에 사는 소년 발레르카의 성장과정을 그린
작품.

영화에 담긴 곤궁하고 비틀린 현실은 감독 자신의 경험이기도 하다.

그도 8년간의 감옥생활, 40세에 영화학교 졸업, 54세에 감독 데뷔라는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카네프스키는 1989년에 만든 첫 작품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에서
1940년대 러시아 빈민층의 황량하고 피폐한 삶을 무표정하게, 때로는 자학적
으로 느껴질 만큼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매춘으로 살아가는 어머니, 배고픔에 미쳐버린 대학교수 등 주인공 발레르카
(파벨 나자로프)의 눈에 비친 세상은 살벌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감독은 사고뭉치 소년의 반항과 일탈,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에서
짙은 서정성을 찾아낸다.

거친 삶 속에서도 소년과 소녀의 사랑처럼 따스하고 인간적인 것들이
피어난다.

발레르카는 가출을 하고 그를 따르던 소녀 갈리아는 강도들의 칼에 맞아
죽는다.

"눈오는 날의 왈츠"는 그로부터 2년후에 만들어졌다.

그 사이 조금 성장한 발레르카는 집으로 돌아와 직업훈련원에 다닌다.

세상은 여전히 궁핍하고 그의 장난기와 도발적인 성격도 변하지 않았다.

학교를 쫓겨난 발레르카는 갈리아의 여동생 발카와 하룻밤을 지낸 후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난다.

도시의 삶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서서히 어른들의 세계로 편입돼 가는 발레르카 앞에 어느날 발카가 나타나
그의 아기를 가졌다고 말한다.

"구속"을 감당할 수 없었던 발레르카는 모든 것을 농담으로 돌리고 발카는
강물에 몸을 던진다.

신작에서도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현실을 차갑게 포착하는
감독의 시선이 강렬하다.

다만 전편의 관심이 소년의 성장과정을 감싸는 외부환경에 있었다면 이번엔
사랑과 성 등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갔다는 느낌.

리얼리즘적인 전편과 달리 새 영화는 난해한 상징과 예언 등 표현주의적
색채가 짙어졌다.

구차한 일상속에서 슬픔과 아름다움을 함께 찾아내는 영상이 날카롭다.

속편은 원작만 못하다는 속설이 무색해진 느낌이다.

가끔 이해하기 힘든 표현들이 머리를 어지럽히긴 하지만 영화 전편에 흐르는
정서와 이야기거리들은 충분히 관객의 공감을 자아낸다.

문제는 검열이다.

직설적인 신체 노출이 많기는하지만 계속 화면 일부를 가리는 모자이크는
짜증스럽다.

<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