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허계씨는 소나무를 즐겨 그린다.

80년대 초반부터 20년가까이 소나무의 모습을 다양한 기법으로 화폭에
담아왔다.

하지만 그가 그려내는 소나무는 자연속의 소나무가 아니다.

줄기와 가지는 붉은 색이고 잎은 청색과 암녹색이다.

그것은 소나무의 청청한 기운, 그 질기고 눈부신 생명력을 상징한다.

그래서 작품의 주제도 "장생"으로 잡았다.

16일부터 99년 1월 6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734-0458)에서 갖는
개인전에서 발표하는 소나무그림에선 전보다 더 자유로운 조형의지를 볼 수
있다.

간명한 형태미에서 벗어나 보다 개방적인 이미지가 화면에 나타난다.

소나무의 형태를 가둬 놓았던 윤곽선을 없앰으로써 붓질이 커지며 속도감이
실렸다.

화면에서 경쾌한 율동이 넘쳐나며 강한 시각적 흥겨움을 유발하고 있다.

출품작은 30여점.

대작에서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근작을 내놓는다.

특히 가로 2m, 세로 5m크기의 대작 "소나무"는 절제되고 순화된 조형미로
관객을 압도한다.

색채구사에서도 붉은색과 청색 녹색 황색이 서로 충돌, 화면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것은 일체의 개념적 이미지에서 탈피, 내부에서 분출되는 감성을 거침없이
화폭에 쏟아부은 결과다.

허씨의 그림앞에 서면 소나무가 갖고 있는 생명력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그 생명력은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을 의미하고 있다.

세종대 교수.

< 이정환 기자 jh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