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은 "악어" "야생동물 보호구역" 등으로 한국영화에서 독특한
영역을 개척한 사람이다.

그가 국내에선 보기 드문 여성 버디영화(우정을 그린 영화)"파란대문"을
만들었다.

주인공은 스물세살 동갑나기.

한명은 대학생이고, 한명은 창녀다.

그들이 만나 인생을 교감하고 진한 우정을 나눈다니 누가 들어도 솔깃한
소재다.

김 감독은 자신의 고향인 포항 바닷가를 촬영지로 잡았다.

여름이면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며 은밀한 성적 거래가 오고가는 곳이다.

새장처럼 쪽방이 붙어있는 이곳 여인숙에 "몸을 팔러" 진아(이지은)가
찾아온다.

짙은 눈썹에 야릇한 슬픔이 서려있는 여인이다.

여인숙에는 주인내외와 대학생인 큰딸 혜미(이혜은), 고등학생이자 사진작가
지망생인 아들 현우가 산다.

진아는 첫날부터 손님을 받고, 혜미는 그러한 진아에게 혐오감을 느낀다.

집안일이 부끄러워 사귀는 남자친구를 초청하지 못하는 평범한 여대생.

현우는 진아의 누드사진을 찍다가 남녀관계를 가르쳐 달라고 조르고, 흔히
그렇듯 뒤늦게 찾아온 기둥서방은 때리고 어르며 그녀의 돈을 뜯는다.

이 도식적인 구도속에서 감독은 여성 친구들간의 반목과 화해를 얘기하려
하지만 설득력은 떨어져 보인다.

복고적인 주제를 모호한 캐릭터와 표현주의적 화법으로 이야기하다보니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만다.

우선, 주인공 진아의 정체가 문제다.

콘돔을 풍선처럼 불어날리며 아무데서나 속살을 내비치는 천박함과 예술적인
감성을 함께 지닌 갸날픈 여인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녀에게 "상품으로서의 성"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자유로와지고 싶어할 뿐이다.

다음은 혜미의 마지막 행동.

진아의 아픔을 공감한 뒤 피곤에 지친 그녀를 위해 스스로 손님방에 대신
들어간다.

하지만 소중히 간직하던 순결을 내던지는 동기로선 부족하게 느껴진다.

스토리구조가 불안정하다보니 한여름밤에 눈을 뿌리는 표현주의적 영상이나
파란 색감이 눈부신 화면도 빛이 바랬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1시간40분의 러닝타임을 별무리없이 꾸려간다.

주인공 이지은이 가진 흡인력과 조연들의 재미있는 캐릭터, 그리고 90-92년
프랑스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화가 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덕분이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는 알았지만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