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6월 미국 방문길에 휴렛팩커드(HP) 회장으로부터
책 한권을 선물받았다.

제목은 "실리콘 밸리 만들기-1백년의 르네상스(The Making of Silicon
Valley)".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의 해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책이었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실리콘 밸리 기업인들과 약속했다.

"우리나라의 벤처기업을 일으키기 위해 무엇보다도 실리콘 밸리의
창업문화를 먼저 정착시킬 것입니다.

실리콘 밸리가 우리에게 주는 벤처정신은 실패와 변화에 대한 관용,
위험성의 모색, 변화와 다양성에 대한 열정, 지역사회로의 재투자라고
믿습니다"

바로 그 책 "실리콘 밸리의 영웅들"(산타클라라밸리역사협회 저, 한국대학생
벤처창업연구회 역, 21세기북스)이 번역돼 나왔다.

여기에는 65개 초일류 벤처기업의 창업과 성장 과정, 최고경영자들과의
인터뷰, 수많은 영웅들의 인사이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실리콘 밸리의 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 책은 1891년 스탠포드대학 개교 이래 중시돼 온 실용주의 학문과
산학연구의 시너지 효과에서 원천을 찾는다.

성공의 주역들은 실패와 모험에서 진정한 창조가 시작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실리콘 밸리에는 창업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대부분 실패한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다.

그곳에서 미래가 열리기 때문이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공동창업자가 많다.

뜻과 배짱이 맞아떨어진 환상의 듀오 3쌍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허름한 차고에서 기술의 최고봉을 이룩한 휴렛과 펙커드, 매킨토시 컴퓨터의
신화를 일군 잡스와 워즈니악, 데스크탑 출판의 혁명을 몰고온 워낙과
게쉬크 등이 그들이다.

이 책은 또 같은 업체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각각 독립해 세계적 기업을
일군 "세포분열"의 역사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페어차일드와 8인의 반역자"다.

우수한 과학자와 공학자 8명이 벨 연구소를 떠나 페어차일드에 합류했다가
경영자의 독선에 진저리를 치며 별도 회사를 차린다.

여기서도 그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흩어지고 부침을 거듭한다.

그러나 이들은 "실리콘 밸리의 법인 직업학교"라는 별명처럼 전설적인
인물들을 수없이 배출한 어머니 역할을 했다.

이같은 도전과 창조의 물결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혁명을 낳은 동인으로
작용했다.

최근 출간된 "인터넷을 움직이는 사람들"(로버트 리드 저, 김연우.은정 역,
김영사)에는 웹 탄생에서 디지털 혁명까지 인터넷 벤처창업의 천일야화가
펼쳐진다.

실리콘 밸리의 트레일러에서 뛰어나와 야후를 창립한 제리 양, 넷스케이프를
출범시킨 마크 안드레센, 마림바(자바)의 킴 롤레시 등 8명의 성공스토리는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다.

인터넷에 말과 노래를 불어넣은 프로그레시브 네트워크스의 롭 글래서,
웹출판의 모델을 제시한 핫와이어드의 앤드류 앵커, 웹서비스 업체 CNET의
할시 마이너의 창업과정도 젊은이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