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차이무가 공연중인 연극 "비언소"는 98년 우리사회의 축소판이다.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픈 일상의 아픈 모습들을 독립된 장면으로 엮어 관객의
눈앞에 늘어 놓는다.

일간신문의 4컷 만화나 후미진 변소의 벽면에 휘갈긴 낙서를 모아놓은 것
같다.

무대는 쓰레기로 뒤덮인 도시의 공중변소.

좀 빠르게 읽으면 변소가 되는 비언소는 터무니 없는 유언비어와 힘없는
이웃들의 넋두리로 채워진 공간이다.

용무가 바쁜 남자들을 쥐잡듯 하며 하찮은 권력에 도취된 여자변소관리인이
있고 "먼저 온 놈이 먼저 볼일을 봐야할지 급한 놈이 똥칸을 먼저 차지해야
할지" 분간못하고 싸움질만 해대는 모습도 그려진다다.

주간지나 뒤적이며 살아가는 일상의 깃털같은 가벼움이 스치고 한켠에서는
성의 상품화와 무자비한 성폭력사건이 꼬리를 문다.

왜 나만 안되는지 한탄하는 소시민의 등뒤에 선 높은 분들은 "2020년
선진국"의 허황된 청사진을 침을 튀기며 외친다.

남북회담은 "대화인지 독백인지" 분간못할 정도이고 "검은안경"을 쓴
세력들의 은밀한 활동도 여전히 유효하지 않는냐고 강변한다.

더할수 없이 무거운 주제이지만 코미디 형식을 빌어 가볍게 처리했다.

일인다역하는 5명의 배우들이 숨가쁘게 꾸미는 무대를 따라가다 보면
배꼽잡는 웃음도 있다.

그러나 각 장면의 희화화에 치우쳐 주제의식의 치열함이 희석되는게
흠이다.

96년 초연때와는 달리 대본을 쓴 이상우가 연출까지 맡았다.

이대연 민복기 박원상 최덕문 노정임 등 출연.

8월30일까지 정보소극장.

화~토 오후 4시30분, 7시30분, 일 오후 3시, 6시.

762-0010.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