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광규(57.한양대 독문과교수)씨의 시집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문학과지성사)과 김춘추(54.가톨릭대 의대교수)씨의 "하늘 목장"
(문학세계사)이 나란히 출간됐다.

이들 시집은 중년 고개에서 피워올린 깨달음의 시편들로 가득하다.

김광규씨는 세월따라 "폭력적인 속도"로 변해가는 삶의 이면을 깊게
응시한다.

방바닥에 누워 "줄기도 가지도 잎도 없이 솟아오른 선인장꽃"을 바라보던
시인은 "양쪽에서 질주해오는 자동차들"사이에 "멈추어 선 민달팽이"를
떠올린다.

"위험하게 벌렁 누워서/선인장꽃"을 바라보는 민달팽이들은 "보이지 않는
운명이 퍼져가는 그런 속도로 기어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그 모습은 "쓰러져 죽는 무리들 썩도록 남겨놓고/혼자서 바싹 마른 채
열반하는" 대추나무, 혹은 "내 마음 한 구석에 들어와 앉아있는 조그만
나무 부처"로 탈바꿈한다.

이를 통해 시인은 "몇백년 묵은 종의 울림"보다 "더 큰 고요"를 일깨운다.

그러면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여비조차 필요없는 여행에/주머니가
왜 그렇게 많은가"라고 묻는다.

김춘추씨는 잃어버린 별과 꽃과 그리움을 재생시켜 그 뿌리에 생명의
핏줄을 이어준다.

그는 "현호색도 산괴불주머니도 은방울꽃도 꼭꼭 숨어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 "헛봄"으로부터 "지가 별인 줄도 모른 채 샛강에서 둠벙에서
찰랑찰랑 반짝이는" 사랑을 건져 올린다.

그의 손길은 "순백 환희의/엔돌핀 한 그루"를 갓 시집온 "신부"로
환생시키고 "고생대의 막내로 태어난 소철"을 "금빛 왕관을 쓰고/수십개의
강철촉수로 아랫도리를 가린/고양이 같이 이쁜 년"으로 거듭나게 한다.

그를 따라 가다보면 인생의 고샅에서 "올라온 길따라 내려갈 때"를 가르쳐
주는 "각시 별" 하나도 만날 수 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