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54)씨가 오랜 "객지"생활을 끝내고 문단으로 돌아왔다.

그가 옥중에서 구상한 여러 편의 "창작 메모"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있을까.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창살 사이로 비쳐드는 햇볕에 등을 대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생각했다.

그 중에는 자신의 대표작인 "삼포가는 길"의 점례와 "장길산"의 민초들,
"한씨 연대기"의 아낙들도 들어있었다.

이제 세상은 변했고 그가 탄생시킬 인물들도 변해야 할 터이다.

그가 예전의 주인공들을 어떤 모습으로 변신시킬지, "새로 열린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인물들을 새로 빚어낼지 독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그는 옥중에서 일제시대 황해도 지방을 무대로 민족의 정체성을 그린
장편 "손님"을 머리속에 썼다.

장기수 이야기를 담은 "오래된 정원"과 영등포 일대의 노동자들 삶을
다룬 "달리는 기차"등 두어편의 중편도 구상해놨다.

자신의 파란많은 행로를 담담하게 풀어낼 자전소설도 밑그림이 그려진
상태다.

그는 병원에서 종합진단이 끝나는대로 이같은 "메모"들을 한장한장 펼칠
계획이다.

"몸이 갇혀있는 동안 작가적 상상력까지 갇혀버리지 않을까 가장
두려웠다"는 그는 "긴 여행끝에 다다른 문학의 고향에서 새로운 작품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다"고 밝혔다.

시인 고은씨가 그에게 지어준 호 "귀석"처럼 그는 "이제 풍운을
가라앉히고" 안정된 삶을 살면서 더 넓은 글밭을 일굴 생각이다.

침체돼 있는 문단에 "가뭄끝의 단비"같은 작품들이 쏟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89년 고 문익환 목사와 북한을 방문한뒤 독일에 머물다 93년4월
귀국, 국가보안법상 밀입북죄로 7년형을 선고받고 충남 공주교도소에서
복역했다.

만주태생으로 평양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6.25때 가족과 함께 월남,
고교 재학때인 62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단편 "입석부근"이 입선돼
등단했다.

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탑"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객지" "삼포가는 길" "한씨연대기"등 사회성짙은
리얼리즘소설과 대하역사소설 "장길산"(전10권)을 펴냈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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