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되지 않은 작가들의 장편이 범람하는 가운데 깔끔한 단편소설집
2권이 나와 눈길을 모은다.

이윤기(51)씨의 "나비 넥타이"(민음사)와 이남희(40)씨의 "플라스틱 섹스"
(창작과비평사).

2권 모두 탄탄한 구성과 문체로 소설미학의 전범을 보여주는 창작집이다.

이윤기씨의 "나비 넥타이"는 첫작품집 "하얀 헬리콥터"이후 10년만에
내놓은 소설집.

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20여년동안 번역작업에 몰두하다
지난해부터 다시 본령인 창작으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집에는 중편 "나비 넥타이"와 단편 "구멍" "갈매기" 등 8편이
실려있다.

"나비 넥타이"는 95년 장편소설을 펴낸 뒤 소설에 전념하겠다는 출사표
삼아 썼다는 작품.

주인공의 친구인 박노수와 그의 누이 노민, 주위의 비아냥거림에도
불구하고 나비넥타이를 고집하는 노수의 아버지와 미국유학에서 콧수염을
훈장처럼 달고온 노수, 그 속에서 삶의 안팎을 동시에 접하는 "나"를 통해
관념속의 삶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누이 노민의 성이 노수와 다른 것을 깨닫고 망연해하는 마지막 장면은
"관념의 벽"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또다른 장치로 활용된다.

속도감과 긴장미를 갖춘 대화, 담백하게 정돈된 문체, 우리말의 에너지를
충분하게 활용하는 어법 등으로 인해 그의 작품은 "잔재주로 안개를
피우지 않는 시원스러운 어법"(이문열) "묘사나 설명을 생략하고 빠른
속도로 그러면서도 부드럽게 활주하는 여백의 문체"(정호웅)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남희씨는 96년 첫창작집 "사십세"를 계기로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소재에서 벗어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상처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는 "플라스틱 섹스"에서 소외된 여성끼리의 동성애와 일상적 욕망의
허위성을 드러내며 삶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작품과 지난 연대의 고통을
추스리며 일상의 권태를 묘사한 작품들을 함께 보여준다.

연작인 "플라스틱 섹스"와 "여자가 여자일 때" "어두운 열정" 등이 전자의
경우.

모성결핍으로 연상의 중년여성에게 빠져드는 초록이, 그녀와의 관계에서
기쁨과 불안을 맛보는 "나".

작가는 이를 통해 막연한 여성해방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암울한 풍속도 속에 그려놓는다.

남성중심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자매애"의 소중함을 인식하면서도
"여성"의 긍정적 가치를 확인하지 못하는 여성들의 단절된 연대감을
비추는 작품들이다.

이남희씨의 또다른 관심은 고통의 연대를 돌아보는 일이다.

이같은 주제는 오랜 연애를 끝낸 친구를 위로하며 함께 여행하는
"건망증"과 한 산악인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힘겨운 자기치유 과정을
돌아보는 "눈의 거처" 등에 담겨 있다.

그가 "세상끝의 골목들"에서 보여준 상처 치유법은 "눈의 거처"에서
새로운 희망찾기로 이어진다.

"저녁무렵이면 점차 땅거미에 잠식되어가는 산"이 바로 "세상의 끝"이라고
보던 주인공이 어느 봄날 산정상에서 노란 유채밭을 발견하고 삶의
"족쇄"로부터 해방되는 과정도 그중 하나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