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지우 첼리비다케(1912~1996).

루마니아 출신의 명지휘자로 일체의 상업적 레코딩을 거부, 살아있을 때
이미 전설이 된 그의 신비로운 음악세계가 공개된다.

영국 EMI사는 첼리비다케가 뭔헨필하모닉오케스트라 재직중(79~96년)
TV와 라디오 방송용으로 녹음한 2백여종의 레코딩에서 선별해 11장의
CD로 구성된 "첼리비다케 에디션"을 발매했다.

이 에디션은 첼리비다케가 54년 카라얀에 밀려 베를린필을 떠난후 오랜
방랑끝에 안착한 뭔헨필과의 녹음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첼리비다케는 이 단체에 혼신의 열정을 쏟아부어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로 이끌었고 이 기간의 빼어난 연주는 그를 "신들린 음악의 성자"
"브루크너 해석의 달인"이라고 불리게 했다.

하지만 그는 음반사가 주도하는 서양음악계에서 평생 야인으로 살았다.

그의 음악관은 진실된 음악이란 살아있는 공간에서만 체험할수 있다는
것.

따라서 그가 생전에 남긴 녹음은 대부분 실황연주고 메이저음반사의
앨범은 초창기 40년대 베를린필과의 녹음들뿐이다.

첼리비다케는 악보에 충실한 기계적인 연주보다 악보에 담긴 작곡자의
정신은 살리되 연주자의 혼을 담는 음악을 강조했다.

커다란 스케일과 유장한 해석이 그의 스타일.

EMI의 에디션은 첼리비다케 사후 난무하는 해적판의 횡행을 더이상
방치할수 없다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탈리아 국영레이블인 "포니트체트라"가 유족과 저작권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60~70년대 RAI방송용 녹음을 음반으로 내놓은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

1차 에디션엔 <>하이든 "교향곡 92,102,104번"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베토벤 "교향곡 4,5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6번"
<>바그너 "탄호이저 서곡"
<>슈만 "교향곡 3,4번"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슈베르트 "교향곡 9번" 등을 담았다.

첼리디바케의 대표적 레퍼토리인 브루크너와 브람스의 음악이 빠졌다.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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