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은 방송계가 어느해보다 불황을 뼈저리게 실감한 한해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광고시장의 불황으로 방송사들은 제작비를
축소하고 재방송을 확대했으며 신입사원 선발인원을 대폭 줄였다.

방송사들은 자회사를 정비하고 해외출장을 축소하는등 군살빼기에
부심했다.

또 과거 히트작들이 "명작앙코르" "드라마걸작선"등의 타이틀을 달고
전파를 탔다.

또한 고액출연자의 출연료를 감축 또는 동결시키고 내년 1월1일부터
평일방송시간을 2시간 단축하는 고육지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올해 방송은 정치방송과 스포츠방송이 강세를 보인 반면 드라마
쇼.오락프로그램은 부진했다.

지난 5월 MBC가 첫물꼬를 튼 TV토론회는 미디어 정치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일대 사건으로 고비용 저효율 정치구조를 타파할 대안으로 각광받았다.

스포츠 중계를 둘러싼 방송사간의 진흙탕싸움도 관심을 끈 사건이었다.

KBS가 미국 메이저리그 박찬호선수 등판경기를 독점중계하면서 불거진
방송사간의 과당경쟁은 MBC가 프랑스 월드컵축구 아시아지역 예선전을
단독중계하면서 극에 달했다.

MBC는 초반부 게임을 단독중계하면서 높은 시청률을 올려 전체 시청률까지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축구중계를 둘러싼 방송사의 과열경쟁은 중계권료를 높여 비싼
외화를 유출시켰다는 사회적 비난과 함께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로부터
외화낭비라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결국 방송3사는 주요 국제경기를 공동중계하기로 합의했다.

방송사간 시청률 위주의 편성은 올해도 지속됐다.

5월부터 평일 오후4시대 방송시간이 연장됐으나 방송3사는 특성있는
편성엔 실패했다.

중복.대응편성에다 프로그램 모방, 시청층.장르 편중등 차별화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KBS1TV의 강세속에 MBC가 선전했으며 KBS2TV와 SBS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SBS는 간판뉴스프로그램 "8시뉴스"를 9시로 옮겨 KBS MBC와 맞대결을
펼쳤으나 시청률 저조로 8시로 다시 후퇴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KBS1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은 대선정국과 맞물려 높은 인기를
이어갔으며 "정때문에"는 일일극에서의 우위를 이어갔다.

주말극의 경우 KBS2 "첫사랑"이 65.8%로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MBC는 "신데렐라"로 94년 "서울의 달" 이후 2년7개월만에 주말극 경쟁에서
KBS를 앞지르는 기쁨을 누렸으며 SBS는 "임꺽정"이후 눈길을 끌만한
후속드라마를 내놓지 못했다.

KBS1 "초원의 빛"은 아침드라마의 단골메뉴인 불륜을 탈피, 잔잔한 감동을
주며 인기를 끌었다.

KBS1은 보도프로에서도 강세를 보여 "9시뉴스"와 "스포츠뉴스"가 상위권을
장식했다.

MBC는 월화드라마와 "일요일 일요일밤에" "남자셋 여자셋"등
오락프로그램에서 강세를 보였으며 감각적 트렌디 드라마로 승부, "별은
내가슴에" "예감"등을 히트시켰다.

MBC "이야기속으로", SBS "토요미스테리극장"등 귀신을 소재로한
프로그램들이 방송위원회의 징계를 받았으며 KBS2 "그대 나를 부를때",
MBC "내가 사는 이유" "영웅반란" "영웅신화" "복수혈전"등 폭력을 미화시킨
"깡패 드라마"들이 안방극장을 장악, 시청자의 따가운 질타를 받기도 했다.

교육방송(EBS)의 경우 독립법인 출범, 상업광고 개시등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위성방송 실시에 즈음해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는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편 2차 지역민방인 울산 전주 인천 청주방송이 하반기 잇따라 개국했으며
1차 지역민방인 부산 대구방송도 FM방송국을 개국했고 경기FM도 첫전파를
발사했다.

이밖에 7월 청소년보호법 시행에 따른 프로그램등급제의 실시,
ABU서울총회 등도 올해 방송계의 관심을 끈 뉴스였다.

< 양준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