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코쿠 남부의 작은도시 고치.

10월31일 이곳에선 국경을 초월해 헌신적 사랑을 실천한 한 여성을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일본여성으로서 목포공생원에서 3천여명의 고아를 기르며 한평생을
보내 "목포의 어머니"라 불리는 고다우치 치즈코 (한국명 윤학자,
1912~1968)여사가 그 주인공.

그녀의 출생지 고치시 와카마스쵸에서 열린 제막식에는 공생원생 82명을
비롯, 목포에서 온 2백50여명의 한국인과 현지 기념비건설기성회 (회장
니시모리 시오조) 회원 등 4백여명이 참석, 고인의 박애정신을 가슴에
새겼다.

"어머니는 평범한 분이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이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준 분들은 바로 한국국민입니다.

어려울 때 식량과 김치를 준 분들이 바로 목포어른들이셨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목포시민장을 치러 주셨습니다.

그분들은 국경과 국적을 넘어 따뜻한 인류애를 보여주셨습니다"

행사도중 인사말을 하던 장남 윤기(55.공생복지재단 회장)씨는 끝내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일본 총독부 관리의 고명딸이던 치즈코여사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1938년 공생원을 설립한 전도사 윤치호씨와 결혼, 함께 고아들을 돌보는
생활을 시작했다.

광복후 주위의 시선을 견디다 못해 잠시 고향 고치로 귀국한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이 그리워 다시 목포로 돌아갔다.

그후 6.25때 남편이 행방불명되자 4남매를 고아들과 똑같이 먹고 입히며
30여년간 3천여명의 아이들을 길러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외국인으로선 예외적으로 한국정부로부터 문화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이번 기념비 건립은 95년의 한일 합작영화 "사랑의 묵시록" (극본
나카지마 다케히로.감독 김수용.주연 이시다 에리.길용우) 제작이 계기가
됐다.

치즈코여사의 일대기를 그린 이 영화는 일본각지에서 상영돼 호평을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제작사가 일본회사로 등록돼 있어 "개봉불가"
상태.

올초 고향 고치에서 뜻을 모은 사람들이 "다우치 치즈코 기념비
건설기성회"를 결성했고 모금활동 3개월만에 1천2백만엔을 모았다.

"한국고아의 어머니 다우치 치즈코 탄생지", "사랑의 고향"을 새겨넣은
비석은 치즈코여사가 평생을 보낸 목포에서 가져왔고 비석 주위에는 그녀가
키운 고아들을 상징하는 3천여개의 자갈을 깔았다.

"고아 아닌 고아로 자라면서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한때 "바보같은"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한 윤기씨였지만 26살때 공생원을
맡은 뒤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헌신적으로 사회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89년에는 오사카에 첫 재일교포 양로원 "고향의집"을 세웠고 최근엔
동경, 가와사키, 고베, 후쿠오카 등 한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에 10여개의
양로시설을 짓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이나 한국사람 구별이 있었겠습니까"

윤기씨는 이번 기념비 제막을 계기로 목포와 고치시, 한국과 일본의
우호관계가 돈독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일본 고치 = 박성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