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는?"

지난해 제작편수에서 미국에 뒤졌다는 기록도 있지만 71년 이후 1위는
줄곧 인도가 차지했다.

매년 9백여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약1백편을 외국에 수출하는 영화강국이
인도다.

"발리우드"(뭄바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란 말이 나올만큼 뭄바이를
중심으로 영화오락산업이 크게 발달했고 할리우드 못지 않은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국내 영화팬들에게 인도는 미지의 나라다.

그동안 비디오로 소개된 인도영화는 94년 실존인물인 천민의적단의 여걸
훌란 데비의 투쟁을 그린 "밴디드 퀸" 한편뿐.

이러한 상황에서 인도영화의 일면이나마 엿볼 수 있는 영화 2편이
안방극장에 소개돼 관심을 끈다.

디파 메타 감독의 "화이어"와 미라 네어 감독의 "카마수트라".

두 영화 모두 세계영화계에 알려진 인도 여성감독의 작품이고 성적인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인도영화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마샬라영화"와 마샬라영화가 아닌 영화.

마샬라영화는 인도의 전통음악극 형식에 춤과 노래, 멜로드라마와 폭력을
적절히 뒤섞은 영화로 인도가 개발한 독특한 장르.

세계에서 가장 도피주의적인 오락물이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인도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한편 종교적 철학적 주제를 진지하게 접근하거나 사회문제를 파고드는
"뉴시네마"가 또다른 큰 줄기다.

두 영화 모두 비마샬라영화지만 "화이어"가 "뉴시네마"에 닿아 있다면
"카마수트라"는 마샬라영화와 유사한 점이 많다.

"화이어"는 인도 뉴델리의 대가족을 배경으로 인습과 신분의 굴레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잔잔하면서도 설득력있게 펼쳐나간다.

큰며느리 라다는 불임의 멍에를 짊어진 불행한 여인.

"욕망은 모든 악의 근원"이라며 철저하게 금욕생활을 하는 남편과
반신불수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묵묵히 집안을 꾸려나간다.

작은 며느리 시타는 신세대 새댁.

신혼의 단꿈에 부풀지만 남편의 노골적인 외도에 절망한다.

서로를 위로하다 차츰 연정을 느끼는 라다와 시타.

시타의 적극적인 애정표현에 멈칫하던 라다는 차츰 시타를 받아들인다.

동서간의 "금기된 사랑"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절제된 화면속에
녹아들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인도 최고의 여배우라는 사바나 아즈미를 비롯한 주연들의 뛰어난 연기.

무엇보다 은유와 심리묘사의 방편으로 회상신 무언극 전통희가극을
적절히 삽입하는 감독의 연출력이 놀랍다.

"카마수트라"는 삼각관계를 축으로 한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16세기 인도왕궁의 신비한 풍광, 전통음악과 춤, 은밀한 에로티시즘등으로
화려하게 포장한 상업영화다.

어릴적부터 함께 자란 공주와 시녀의 질투와 갈등, 굴곡 많은 사랑과
인생을 담았지만 줄거리는 엉성하고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결말이
고루하다.

인도의 이국적인 정취를 가능한한 많이 담아내서 서양세계에 인상적으로
보여주려는 데 집착한 오리엔탈리즘영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