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4시,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민속마을.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솔솔 부는 바람이 귓볼을 간지럽히는 이곳.

들판에는 고개숙인 벼이삭이 풍성하고 간간이 개짖는 소리가 평화스럽다.

이런 고즈넉함 속에 1백70년된 마을 위쪽 고저택에선 일단의 무리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카메라 돌았어요. 조용히 좀 해주세요" (AD)

"스탠바이, 마이크 높이고"

"아이, 큐!" (PD)

"어머니 저 왔어요" (김영애)

"네가 웬일이냐" (여운계)

"어머니가 보고 싶어 왔죠"

"아이고, 빈말이라도 고맙구나. 이 늙은이가 보고자팠다니"

"컷!"

SBSTV가 "미아리 일번지" 후속으로 27일부터 방영할 밤 9시 일일극
"지평선 너머" (극본 이금림, 연출 정을영)의 촬영이 한창이다.

60년대말 군산 송부잣집으로 탈바꿈한 이간선생 9대손의 75칸짜리
기와집.

여운계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어색하지 않다.

정PD는 카메라의 위치를 바꿔 같은 장면을 찍는다.

이러기를 10여회.

최고의 화면을 만들려는 연출자의 의지가 엿보인다.

다음은 김영애가 흐느끼며 주저앉는 장면.

큐사인이 떨어지자 김영애는 이내 주저앉아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아니 아니. 뭔가 이상해"

정PD의 지적에 카메라는 다시 돈다.

이날 촬영내용은 10회분 마지막 신.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운 느낌이 역력한 송만호의 집에 첩 서부용
(김영애)이 찾아와 마당 평상에서 고추를 말리고 있는 송만호의 어머니
강학순 (여운계) 앞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는 장면이다.

촬영을 가로막는 것은 NG보다 햇빛이었다.

햇빛이 너무 강렬해 자연스런 색을 만들기 힘든 모양.

"샤"라고 불리는 일종의 햇빛가리개를 동원하고 조명으로 빛을 만든다.

중견탤런트인 여운계과 김영애는 이름에 어울리는 자연스런 연기로
주변을 압도했다.

정신없이 촬영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 5시가 넘는다.

"지평선 너머"는 KBS 일일드라마를 정상에 올려놓은 "당신이 그리워질
때"를 집필한 이금림과 "목욕탕집 남자들"의 정을영 PD가 호흡을 맞춘
SBS의 야심작.

정PD는 "아버지 세대의 애증관계가 자식세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인간군상의 일상을 그린 가족드라마지만 다른 일일극과 달리
70~80년대의 시대상황을 반영, 사회성 짙은 드라마를 지향하겠다"고
밝혔다.

군산 옥구지방 만석꾼의 3대독자였던 송만호 (박근형)와 송만호 집안의
집사 조상진 (남일우), 머슴아들인 박두칠 (박인환) 등 1세대와 그
자식들인 송영선 (송윤아).영민 (박소현), 조수영 (황인성).수희 (이태란),
박종태 (이성재).종미 (김서라) 등이 중심인물.

< 아산 = 양준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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