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 종사한 20여년동안 제 주제는 늘 아름다운 여성이었습니다.

남성과 구분되지 않는 강한 스타일이 유행하는 시점에 시대착오적인
주제가 아니냐고 보는 이도 있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보편적 욕구는
영원하다"는 믿음으로 제 세계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광희룩스" 대표인 디자이너 이광희(45)씨.

그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실루엣과 섬세한 재단, 그리고 정교한
디테일로 이름높은 옷을 만들어 한국 패션계 대표주자의 한사람으로 자리
잡았다.

전공(이화여대 비서학과)과 무관한 패션에 뛰어든 것은 동생(이자희)때문.

패션을 공부하던 동생의 영향으로 옷에 매료돼 있던 그는 졸업후 과감하게
생각을 바꿔 국제복장학원에 들어갔다.

이때 배운 것은 "옷의 품격은 정성에 의해 좌우된다" "1류와 2류의 차이는
한번 더 생각하고 손길을 보내는데 달렸다"는 것이었다.

78년 "비스카운테스(Viscountess)부티크"를 차려 맞춤복을 시작한 뒤 이런
믿음을 실천해갔다.

70년대후반은 기성복업체가 생겨나면서 패션시장이 활성화되는 때였고
경쟁이 본격화되자 할인판매도 성행했다.

그러나 그는 "할인하지 않는 옷, 쉽게 사기 어려운 옷"이라는 이미지를
굳혀갔다.

엑스포 기념패션쇼(81년) 파리 프레타포르테전시회(85년) 서울올림픽
기념패션쇼(88년) 등 대형 패션쇼에 참가했지만 "굳이 모여서 일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개성이 흐려질지 모른다는 우려때문에" 그룹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그가 명사로 떠오른 것은 옷때문만은 아니다.

92년부터 정기컬렉션의 수익금을 모두 불우이웃을 위해 썼다.

탁노소 설립기금마련(92년4월) 소년소녀 가장돕기(92년12월) 장애인
치료센터 건립기금마련(93년4월) 정신지체아 재활시설돕기(93년9월)
심장병어린이 돕기(94년10월) 교육민회 기금마련(95년9월) 신장병 어린이
돕기(97년3월) 등이 그것.

오는 16일(오후 3.7시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여는 97/98추동컬렉션
수익금은 사회운동단체인 아버지재단(대표 강우현) 활동기금으로 낼
예정이다.

그래픽디자이너인 강씨 작품과 "새"를 주제로 한 그의 의상이 조화된
무대로 꾸밀 계획.

"옷만 만들기도 힘들텐데 괜한 일을 벌인다"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 이씨는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바탕이 바로 이런 마음가짐"이라고 여유있게 말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