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문단에 여성작가 두사람의 소설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소설가 이선(44)씨의 장편 "우리가 쏘아올린 파이어니어호" (열림원)와
창작집 "귀신들" (민음사), 박숙희(38)씨의 첫 장편소설 "쾌활한 광기"
(현암사)가 그것.

두사람 모두 섬세한 심리묘사를 바탕으로 지난 시절의 상처와
현대사회의 명암을 깔끔하게 그렸다.

이선씨의 "우리가 쏘아올린 파이어니어호"는 70년대초 서울의 한 여대를
배경으로 학생회 간부와 가족, 보직교수, 기관원들의 관계를 통해 암울한
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때의 활동을 80년대운동의 밑그림으로 제시한 점과 등장인물들의 삶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조명한 것이 특징.

주요인물은 학생들을 통제해야 하는 입장이면서도 그들을 이해하려는
신교수, 장학금 때문에 학생회 일을 하는 문숙, 사회의식은 없지만
운동권친구를 믿고 돕는 호정, 절망적인 현실과 싸우면서도 순간순간
회의하는 학생회장 동희, 학생들의 기피인물인 기관원과 따뜻한 가장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남선생 등이다.

이들 모두는 서로 다른 위치에 섰던 당대인들의 갈등과 모순을 드러낸다.

"파이어니어호"는 암담했던 70년대에 희망을 건지려 했던 구원의 상징.

작가는 "빛바랜 흑백사진같은 그 시절의 침묵은 결코 침묵이 아니었다"며
"그때 돌아서지 않고 끊임없이 절망을 소아올린 "우리"가 있었기에 혼돈의
90년대에 대응할 힘이 잉태됐다"고 말한다.

그는 창작집 "귀신들"에 실린 단편 "형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사막에서 사는 법" "붉은 덩굴장미" 등을 통해서도 세상의 이면과 내안의
또다른 나에게로 향하는 "창"을 제시했다.

박숙희씨의 "쾌활한 광기"는 대학 국문과 동기인 두 여성의 자아탐색
과정을 심도있게 다룬 작품.

소심하고 내성적인 수인의 자취방에 자기주장이 강하고 어떤 구속도
싫어하는 사희가 들어온다.

수인은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갖고 있는 사희에게 열등감과 동경심,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느낀다.

지나치게 자유분방하고 광기어린 사희에게 당혹감을 느끼던 수인은
그녀에게 남자친구까지 빼앗긴 뒤 자신도 모르게 사희의 도발적인 성격을
흉내내고 사랑하지도 않는 유부남과 관계를 맺는다.

그러다 어느 것도 자신의 참모습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수인에게 사희의
자살소식이 들려온다.

수인에게 사희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불가해한 현실속에서 완전한
자유를 추구하는 영속적 삶의 의미로 다가온다.

작품속의 두 사람은 한 인물에 공존하는 상반된 자아이자 혼돈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으로 읽힌다.

그간의 페미니즘 문학이 남성과의 대립구조를 드러내거나 억압당하는
여성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한 것과 달리 이 작품은 독립된 여성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새로운 페미니즘의 출구를 보여준다.

광기의 이미지도 퇴행적이기보다 창조적 도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작가에 따르면 "광기란 신이 인간에게 살짝 부여해준 비상의 의미인
동시에 쾌활하고 발랄한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