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모자와 드레스 흰장갑 양산으로 치장한 숙녀, 정성껏 콧수염을 다듬고
멜빵바지에 모자를 쓴 신사, 밝은색 셔츠와 푸른 반바지 단화에 목양말을
신은 아이들이 내뿜는 밝은 웃음과 행복한 분위기....

영화 "마르셀의 여름" (감독 이브 로베르, 제작 고몽)은 정겨운 옛
일기장 같은 영화다.

정성껏 치장한 사람들, 환한 미소, 무용처럼 경쾌한 몸놀림은 20세기초
프랑스 지방도시의 안온한 삶을 묘사한 것이지만 90년대 한국관객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91년 프랑스 고몽사가 만들어 프랑스 영화사상 가장 많은
6백32만명 (2위 "엄마의 성" 3위 "마농의 샘")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

"화니와 마리우스"로 유명한 작가 마르셀 빠뇰의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마르셀은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사인 중류가정 소년.

그는 사려깊고 아름다운 엄마, 귀여운 동생 등 부족함 없는 가족을
가졌고 특히 아버지에 대해서는 절대적 신뢰를 품고 있다.

그 믿음이 깨진 건 여름방학때.

전지전능한 듯하던 아버지가 사냥총 다루는 법을 몰라 이모부에게
쩔쩔매고 어렵사리 새를 잡은 뒤에는 표나게 우쭐대는 모습을 보면서 그도
인간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부자관계는 더욱 가까워진다는 결론.

낙천적인 성장소설풍 줄거리다.

에피소드들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지만 아기자기하다.

조기교육 열풍에 휩싸인 요즘과 달리, 4살짜리 아이가 혼자 글자를
깨치자 엄마는 "너무 일찍 글을 알면 머리가 아파진다"며 책을 멀리하게
하고 동생이 생긴 뒤 생명탄생에 대해 궁금해하자 양배추 요정, 씨앗 등의
단어로 설명한다.

부모의 말에 의구심을 가진 아이들이 밝혀낸 탄생의 비밀은 "아기는
엄마배꼽의 단추를 열고 나온다"는 것.

감각적이고 긴박감 넘치는 화면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시시하다고 느낄수
있지만 "나 어릴 적엔..."하는 포근한 향수를 안고 의자에 차분히 몸을
기대면 절로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2일 호암아트홀 개봉.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