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은 세종대왕 탄신 6백돌이 되는 날.

이를 기념, 문화체육부는 15일 서울 경복궁근정전에서 "세종대왕 탄신
하례 재현행사"를 열고, 국립중앙도서관은 15~24일 "세종대왕 탄신 6백돌
기념자료전"을 연다.

이에 앞서 세종대왕기념사업회(회장 박종국)는 "21세기 문화.과학을 위한
세종대왕 재조명"세미나(9일), 한국어문교육연구회(회장 남광우)는 "세종
탄신 6백주년 기념 학술강연"(13일) 등을 개최, 탁월한 군주요 성군이었던
세종의 업적을 정리하고 그 현대적 의미를 되새겼다.

두 학술대회에 참석한 학자들은 세종대왕의 근본 통치이념은 민본주의
였으며 세종의 이념을 계승할 때만 한국사회가 위기를 극복하고 제2의
도약을 이룰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21세기..."에서 기조강연을 한 손보기 단국대
초빙교수는 "세종대왕은 흉년이 든 것을 알고 술을 빚지 못하도록 어명을
내렸고 날씨가 추워지면 죄수들을 출옥시켰으며 아기를 낳은 아내종을 둔
남편종에게 30일의 휴가를 주도록 했다"며 "세종대왕이 조선조 통치이념으로
확립한 것은 민본주의였다"고 밝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권력자들은 특정 족벌이나 계층의 이익을 대변한
경우가 많았는데 세종은 조세 교육 보건 인권에서 모두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는게 손교수의 설명이다.

허웅 한글학회장은 "세종조의 언어정책과 그 정신을 이어받는 길"에서
"세종이 훈민정음 머리말에서 "우리나라의 말소리는 중국과 달라서..."라고
지적한 것은 세종의 민족주체 의식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제시대에 일본말 실력을 자랑한 사람, 요즘에 영어를 섞어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는 중국글자를 쓰지 못해 안달인
무리들이 많은 상황에서 세종의 이 "선언"은 민족 자주의식을 고취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전상운 전성신여대총장, 안재순 강원대교수, 박병호 서울대명예교수,
송방송 영남대교수 등도 세종이 과학 윤리 음악 의학 국방 등 다양한 영역
에서 민족의 진취성을 드러내려 애썼다고 밝혔다.

13일 대우재단빌딩에서 열린 "세종탄신..."에서 윤병석 인하대명예교수는
"세종대왕의 문화정책"을 통해 "세종이 모든 학문체계를 유교적 이념과
규범에 맞추도록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고루한 공리공담이 아니었으며
"경세제민"과 "보국안민"에 바탕을 둔 실용적 학문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진태하 명지대교수는 "훈민정음의 창제연대와 한글날"에서 "세종대왕
의 정확한 탄신일을 사료로 추적해 보면 5월15일이 아닌 5월7일이며, 한글날
도 훈민정음 반포일을 기준으로 정한다면 10월9일이 아니라 9월10일이
정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남광우(명지대 명예교수) 회장장 등 한국어문교육연구원 소속
학자들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가 한글전용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며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어휘중 70%이상이 한자어임을 명심한다면 한글전용론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연구원은 이날 사용빈도가 높은 2천자를 선정, 상용한자로 제정할 것을
문화체육부장관에게 건의했다.

< 박준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