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서울 동부 이촌동 충신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KNCC) 대표회장이자 예장통합총회장인 박종순
목사가 이끄는 이 교회는 창립 40돌을 맞아 활기찬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다.

충신교회는 11일 오전 10시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 (펜싱경기장)에서
40주년기념 전교인 연합예배를 갖는다.

이자리에서 박목사는 최근 사회혼란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한국병을
영적으로 치유하려면 우리모두의 회개와 기도가 절실함을 강조할 계획이다.

12일에는 이태원 캐피탈호텔에서 거택보호자들을 위한 칠순잔치 등
다양한 행사도 마련한다.

제주도에 기념교회를 개척하고 중국 조선족교회 지원 및 의료봉사활동도
펼칠 계획.

9월18일에는 예술의전당에서 대규모 기념음악회를 열고 세계복음화를
위해 한국어 영어 일본어 등 3개국어로 구성된 인터넷 홈페이지를 연내
개설할 예정이다.

또 개교회로는 드물게 "2000년대의 한국교회와 세계선교"를 주제로
국제학술세미나를 지난달 개최했고 최근까지 "창립 40주년 및 박종순
목사 성역 40주년, 근속 20주년 감사예배"와 기념부흥회, 전국 2백여개의
지원교회 목회자 초청 학술행사 등을 가졌다.

박목사는 "40년의 광야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가나안시대의 서장을 연
이스라엘의 심정으로 복음에 의한 사회.국가건설을 위해 선교에 힘쓸
생각"이라고 밝혔다.

목회이념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경영, 화해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는
선교, 성령이 충만하고 균형잡힌 목회".

"참된 메시지는 삶의 현장에서 나오며 깊은 사색과 명상 기도를 통해
얻어집니다.

주일날 1시간 예배에 설교시간은 28분 정도밖에 안되는데 그 시간동안
"맛있는 양식"을 다주지는 못할지라도 "아,오늘 맛이 있었다. 내가 새로운
결단을 하고 돌아간다"는 느낌을 성도들에게 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전달되지 않은 설교는 독백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박목사의 설교는 정평이 나있고 교인들도 대부분 "목사님의
말씀이 좋아서" 찾아온다.

"예수를 잃어버린 사람들" 등 그간 출간된 설교집만 14권이고 다른
저서까지 합치면 40여권이 넘는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으면 안개속에서 빛줄기가 보이는 듯해요.
그 말씀이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샘솟게 하거든요" (김영미.29)

57년 2월 서울 청파동에서 창립예배를 가진 충신교회는 2개월뒤
동자동의 한 벽돌집 3층을 전세내 기반을 다진뒤 꾸준한 성장을 계속했다.

동부 이촌동으로 옮겨온 것은 70년대말.

76년 박종순 목사가 부임하면서 급성장, 78년 성전봉헌 예배를 드렸다.

작지만 큰 교회.

출석교인 4천명인 이 교회는 역사에 비해 덩치는 작은 편이다.

이는 "교회의 외형을 늘리는데 욕심내지 않고 복음이 미치지 못한 곳에
하나님의 사랑을 충실히 전하자"는 박목사의 신념 때문.

그간 농어촌 미자립교회 2백여곳을 지원하면서 대구 경주 일산 전남
온당 충북 용강 등 10여곳에 교회를 개척했다.

충신교회는 해외선교에도 주력,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 신학교를
설립하고 카자흐스탄 국립대학에 종교학과를 설치했다.

북한 식량난 해소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박목사는 3월 미국에서 열린 "남.북.미 교회협의회"의 논의를 바탕으로
지난달에는 "북한동포돕기 비상대책기구"를 발족시켜 북한동포의 기근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 고두현 기자 >

< 충신교회 교인들 >

<>경제계

= 현명관 (삼성물산부회장) 이춘무 (고제회장)
윤관숙 (후지테크코리아대표이사) 이도선 (교보생명고문)
박준배 (삼성생명자문) 이인원 (롯데백화점전무)
류근창 (청구건설상임고문)

<>정.관계

= 최상엽 (법무부장관)

<>학계

= 이종익 (전주대총장) 현길언 (한양대교수.소설가)
이영조 (한국예술종합학교교수)

<>예체능계

= 최수종.하희라.김창숙.최명길 (탤런트)
이홍렬.박미선.이성미.배동성 (개그맨)
이규원.장은영.민창기 (아나운서)
차범근 (월드컵축구국가대표감독)

<>의료계

= 나춘균 (반도정형외과원장) 김철수 (강남백병원장)
김주은 (서울비뇨기과원장) 고재경 (현대중앙병원)
장상식 (한나여성의원장) 홍성렬 (인성원한의원장)
김경우 (한서의원장) 김태선 (김내과의원장)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