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감독 구성주)는 오랜만에 보는
진지한 주제의 한국영화다.

코미디와 트렌디드라마 형식의 멜러물이 휩쓰는 요즘 우리 영화계에서
이 작품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주목받는다.

원작자는 "경마장 가는 길"의 하일지씨.

감독 구성주씨는 장선우 감독의 조감독으로 "경마장 가는 길" "화엄경"
"너에게 나를 보낸다" 제작을 도왔다.

이 영화는 그의 데뷔작이다.

중심줄거리는 죽음을 앞둔 한 남자의 격정적인 사랑과 절망.

주인공 (김갑수)은 형에게 애인 (이응경)을 뺏긴후 미국 유학을 떠나
공학박사로 성공한다.

그러나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불치병 선고를 받고는 20년만에 요양을
위해 고국으로 돌아온다.

이곳에서 만난 신비로운 여자 난희 (양정지).

그는 강한 힘에 이끌리듯 그녀에게 빠져 숨겨뒀던 아기까지 받아들인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도 잠깐.

아기가 죽으면서 난희는 절망에 빠지고 둘의 사이는 돌이킬수없이
깨져버린다.

끝장면은 홀로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주인공의 클로즈업된 모습.

감독이 말하는 이 영화의 핵심은 "아이러니칼한 인간운명"이다.

연인을 잃고 먼길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으나 또다시 연인을 잃는다.

첫 연인은 형에게 뺏겼고 두번째 연인은 바로 그 형의 아들인 조카에게서
뺏는다 (난희는 처음 조카의 여자친구였다).

그리고 이 조카는 바로 그 (김갑수)의 아들임이 형수 (이응경)의 입을
통해 밝혀진다.

결국 아들의 애인을 가로챈 셈이 된 주인공의 파멸은 그리스신화속의
오이디프스왕을 연상시킨다.

"역오이디프스 컴플렉스"라고나 할까.

이 영화는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꺼리도 제공했다.

주인공이 난희의 숨겨둔 아기를 보고 아이 아버지를 묻자 장난스럽게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를 거론하는 대목 때문에
공연윤리위원회가 심의를 보류한 것.

제작사 (한씨네텍.신풍창업투자)는 현재 재심의를 신청해놓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