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단행본 출판사 고려원이 부도를 냈다.

무리한 사업확장 때문이라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규모에 비해 유통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한 국내 단행본 출판시장이 낳은 결과라는 동정론도 나오고
있다.

국내 출판유통 시장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상중하 3회에 나눠 싣는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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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지향하는 머리와 20세기의 몸체, 그 몸체를 지탱하는 19세기
다리가 엉겨 있다"

시장규모에서 세계 7위를 자랑하는 우리 출판산업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독자가 21세기를 바라보는 머리라면, 신간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몸체,
출판유통 구조는 다리다.

"이렇게 전근대적인 유통구조가 어떻게 가능합니까".

대형유통업체 출신의 유통전문가가 출판유통의 현주소를 파악한 뒤
했다는 말이다.

현재 도서유통 과정은 출판사-도매상-소매상-독자 및 출판사-소매상-독자
라인의 둘로 나눠진다.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통구조가 너무 복잡하고 중복돼
엄청난 물류비용과 과도한 경쟁이 초래되고 있다.

"중간규모 출판사는 보통 20개 도매상과 거래합니다.

소규모 서점도 최소한 2~3개의 도매상으로부터 책을 공급받습니다.

실제 수요보다 2배이상 많은 책이 서점에 진열된다는 얘깁니다.

전근대적인 도매구조때문에 출판사가 처음부터 재고부담을 떠안는 것은
물론 실제 유통량이 얼마인지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출판사 대표가 지적한 출판유통의 문제다.

중복거래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비용을 출판사와 독자가 떠안을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출판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출판산업은 96년말 현재 1만1천여개의 출판사 (책을 낸 출판사는
2천5백여개)와 80여개의 도매상, 5천5백여개의 서점으로 이뤄져 있다.

최악의 경우 1만1천여개 출판사가 80여 도매상과 거래하고, 그
도매상들이 다시 5천5백여개의 서점과 거래해야 한다.

그런데도 국내에는 아직 전국 규모의 거래선을 확보한 도매상이 없다.

김정현의 "아버지" 같은 초베스트셀러가 나올 경우 해당 출판사는 거의
모든 도매상 및 대형서점과 거래해야 전국에 책을 진열할 수 있다.

도매상이 판매대행기구의 역할을 떠안고 있는 것도 문제.

반품이 가능하다는 조건 아래 도매회사가 출판사에서 책을 사들여
서점에 재판매하는 유통형태로 도매상의 영업력이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수요에 상관없이 도매상의 밀어내기에 의해 서점에 배포된 책이 반품될
경우 도매상과 출판사가 직접적인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3~6개월짜리 어음거래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재정이 부실한 도매상의
난립은 결국 전체 출판업계의 부실로 이어진다.

출판유통의 또다른 걸림돌은 서점.

낙후된 서점구조가 전근대적인 도서유통의 주요요인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만큼 소매서점의 문제는 심각하다.

현재의 소형서점 규모로는 단행본의 기본부수조차 소화하기 힘들다.

소형서점 중심구조가 전국 규모 도매상이 나타나기 힘든 요인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처럼 복잡하고 기형적인 출판유통구조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도매 및
소매구조의 개선이 시급하다.

해답은 복잡하고 중복된 출판유통 구조를 가급적 단선화.집중화시키는
것이다.

독자들이 필요한 책을 쉽고 빠르게, 그리고 싸게 살 수 있도록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출판산업 경쟁력 강화의 첩경이다.

< 박준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