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가족과 가정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가부장제가 와해되고 이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제도가
정립되지 않은 가치관의 "아노미시대"에도 가정은 따뜻한 보금자리의 기능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밝은 미래상을 제시하는 우수영화 3편이 3월
비디오로 한꺼번에 출시된다.

"화니와 알렉산더"(우일영상) "브라더스토리"(시네마트) "안토니아스라인"
(SKC)이 바로 그것.

이 영화들은 시간과 장소는 다르지만 가족과 가정을 기초로,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넘칠 때 살맛나는 세상이 열린다는 점을 서정적이고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스웨덴 출신의 거장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이 "화니와 알렉산더"에서
제재로 삼은 것은 한 대가족의 따뜻한 삶이다.

화자는 행복한 삶을 살다가 갑자기 아버지를 잃게 되는 화니와 알렉산더.

영화는 행복이 가득한 한 가정의 크리스마스 파티로 시작한다.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 오스카가 죽자 두 남매는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엄격한 목사의 집으로 들어간다.

지나친 금욕주의와 편집광적인 목사에게 시달리던 이들은 다락방에
감금됐다가 가까스로 그곳을 탈출한다.

옛집에 돌아온 이들은 다시 평화와 행복을 찾는다.

베르히만감독은 어린 화니와 알렉산더의 눈을 통해 따뜻한 보통가족과
냉혹하고 위선적인 목사가족을 대비, 현대사회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에 온갖 역경을 딛고 가정을 회복한 화니와
알렉산더의 환한 웃음을 통해 미래를 낙관적으로 조망한다.

베르히만감독이 자신의 마지막 영화라고 천명했던 작품.

"브라더스토리"는 피부색이 다른 두 형제가 가족의 소중함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헐리우드 드라마.

평생을 백인으로 살아온 얼은 자신의 어머니가 흑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의 뿌리를 찾으러 나선다.

시카고에서 마침내 형 머독을 찾게 되나 머독은 자신과 피부색이 다른
흑인이다.

둘은 서로를 냉대하고 얼은 고향집으로 향한다.

불량배에게 차와 돈을 빼앗긴 얼은 머독의 집을 다시 찾고 형제는
응어리를 조금씩 풀어간다.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리처드 피어스 감독은 밝고 경쾌하게 처리했다.

로버트 듀발 주연.

"브라더스토리"가 형제의 얘기라면 "안토니아스라인"은 여인 4대의 얘기다.

안토니아는 어머니의 임종을 맞아 딸 다니엘을 데리고 고향을 찾는다.

다니엘은 테레사를 낳고, 테레사는 빨간 머리의 사라를 낳아 여인 4대가
50년동안 살아간다.

그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강간을 당하는 등 남성우위의 사회구조속에서
억압을 경험한다.

남성지배이데올로기에 혐오감을 느낀 이들은 조화롭고 생명력 넘치는
여성성이 조율하는 세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살아간다.

언뜻 평범한 페미니즘계열 영화로 보기 쉽지만 네덜란드출신 여성감독
마린 고리스는 억눌리는 여성에 대한 해법으로 남성에 대한 거부도, 투쟁도,
회피도 아닌 "감싸안기"를 시도한다.

잠언같은 대사도 돋보인다.

< 박준동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일자).